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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노년의 집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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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3.18 17: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오래 전 결혼하면서 시골 마을 허름한 집에서 16년 정도를 살았다. 마루 하나로 이어진 부엌과 방, 그리고 불을 때는 방이 있는 작은 집이다. 화장실은 재래식이고 대문도 없는 집이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콩깍지가 씌웠는지 어느 것 하나 부끄럽지 않았다. 

결혼 전 살았던 읍내 친정집에서의 생활보다는 불편한 점도 많았고, 주변 환경도 달랐다.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물은 가끔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옆집에서 필요한 만큼만 통에 받아다 사용했다. 여름이면 뒷 산에서 날아오는 이름 모를 벌레와 모기로 문을 열기가 겁났다. 겨울에는 벽에서도 찬 공기가 새어 나와 이불을 벽에 두르고, 밖에는 비닐을 치고 살았다. 일상생활은 불편했으나 그 집에서의 삶은 행복했다.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따뜻한 봄이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물을 뜯으러 가기도 하고 보리 순이 초록물결을 이루는 들판을 뛰어 다녔다. 여름에 아이들은 가까운 냇가에 물장구를 치러 가고, 밤이면 절에 올라가 사슴벌레를 잡으며 놀았다. 가을이면 말썽꾸러기인 둘째는 동네에서 몇 몇 아이들과 콩을 서리해 구워 먹기도 했다.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하루종일 코가 빨개지도록 밖에서 놀아도 지치지 않았다. 겨울 한 철은 가끔 불때는 방에서 자기도 했었다. 불을 땔 때 구워 먹은 고구마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어릴 적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목공소를 하셨기에 읍내에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려움이 없는 생활을 했었다. 냉이와 달래도 잘 몰랐기에 풀을 뽑는다고 한 것이 더덕줄기를 뽑아 버린 적도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교육을 위해 읍내로 나왔다. 처음 몇 년은 시골에도 집을 두고 읍내에 거처를 마련했었다. 그러다가 아예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시골집을 비워 두게 되었다. 

시골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 들면서 허름한 집은 점점 더 무너졌다. 아궁이에 흙이 봄볕에 녹는 땅처럼 풀어졌다. 사람이 살 때와는 다르게 구석구석이 허물어졌다. 고민 끝에 시골집을 팔고 더위와 추위 걱정 없는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각자의 삶이 더 중요해진 부분도 있지만, 방 하나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때와는 다른 공간이었다. 넓은 거실에 앉아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로웠고 시골집이 그리웠다. 

큰 아들은 패션 공부를 한다고 서울로 가고, 둘째는 군에 가서 아파트에는 우리 두 부부만 오롯이 남게 되었다. 두 식구인데도 마주 앉아 밥을 함께 먹을 여유도 없이 바빴다. 그러던 지난겨울 어느 날, 남편이 농막을 짓고 싶다며 말을 꺼냈다. 시골집이 있던 동네에 우리 논이 있는데 그 곳에 짓고 싶다는 것이다. 남편의 뜻은 확고했고, 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올 봄이 되면서 농막에 대한 허가사항을 알아보고, 가격이며 시설을 여러 곳 알아보더니 중고로 컨테이너를 사게 되었다. 컨테이너를 논 가운데 들여 놓고 새 단장을 했다. 지붕을 씌우고 농막이 완성되기까지 가 볼 시간이 없었다. 겨우 시간 내서 청소를 하러 갔다. 잿빛 지붕에 민트 색으로 칠해진 작은 집이 논 가운데 있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안에 들어가서 창문을 모두 열고 보니 절 위에 있는 지장보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있으니 불경 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입가에 부처님 미소가 번졌다. 힘든 일상의 피로가 눈앞에 펼쳐진 자연 앞에 풀린다. 시골집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한번 불러 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되었다.

우리들 삶이 변한 것처럼 내가 살던 집도 거처를 여러 번 옮겼다. 과연 내가 노년에 살고 싶은 집은 어떤 것일까? 남편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집이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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