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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채굴의 시대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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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3.26 15:25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가상화폐 시장 이야기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시장 이야기이다.

정규교육 과정에 언급되는 음악의 시대는 보통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그리고 근, 현대로 구분한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품들의 ‘넘버’를 갖게 되면서 필요한 음악을 찾아 듣는 시대가 되었고, 근래에는 중세 가톨릭 수사들이 부르던 그레고리오 성가 같은 고(古)악보까지 복원해서 음반으로 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괴상하게만 느껴지는 현대음악까지 참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시대의 다채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 클래식 음악시장이다. 

그러나 그저 과거에 잠시 있었던 음악이었고 이미 유행이 지나가면 그만인 것을 매번 다시 연주해가며 사골마냥 우려내며 클래식 장르라고 우기는 듯도 하고, 그저 교양이라는 허울로 무장한 고리타분한 영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19세기 초 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는 클래식음악이란 것들은 바로 당대의 유행곡이자 대중음악이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곡가가 슈베르트, 로시니였다면, 세월이 흐르며 바흐나 헨델 등 이전 구세대 작곡가들은 자연스럽게 순위차트에서 빠지며 잊혀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가 1829년에 사건이 일어나는데, 멘델스존이 꼭 100년 전인 1729년에 작곡되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 악보를 찾아내어 베를린에서 다시 연주한 것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터뜨린다, 작곡되어 바흐 생전에 딱 3회만 공연됐고, 그나마도 작곡자 사후에는 단 한 번도 연주 되지 않았던 곡이 작곡된 지 꼭 백년 만에 차트에 재 진입을 하는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 당시 바흐가 지금처럼 거장 취급을 받고 있었을까? 실상은 거의 잊혔다가 1802년에 전기 비슷한 책으로 한번 나왔다가 도로 20년 넘게 다시 잊혔던 사람일 뿐이었다. 지금 초중교과서에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라고까지 추앙받는 높은 위치는 바흐 생전이 아닌 사후 재연주로 성공을 거뒀던 바로 이때 확립된 것이었다. 

190년 전, 사람들은 그렇게 차트의 역주행을 경험했고, 이후부터는 소위 클래식 레퍼토리라고 불리는 좋은 곡들을 찾아 연주하는 시장이 따로 생겼다. 그 이전의 악보를 찾아내며 좋은 음악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고, 마냥 아무거나 가져오지 않고 그 중 쓸 만한 보석만을 캐내니 채굴인 셈이었다.

대중음악도 이전의 좋은 곡들을 다시 리메이크하는 것처럼, 클래식 장르는 원곡을 그대로 두면서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를 반영하며 연주자 나름의 주법과 해석으로 재 연주한다. 그런데 에디슨 시절의 레코딩 기법 초기의 녹음과 현재의 녹음을 비교하면, 곡의 빠르기와 주법이 아예 다른 곡인 것 마냥 연주자의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20세기 초의 기준음보다 현재의 기준음은 거의 반음에 가깝게 음정 높이(피치)가 높아져서 음색이 지니는 밀도와 긴장감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거기에 발달하는 악기들과 새롭게 해석된 연주기법들이 더해지고, 20세기 초부터 음악 해석의 주체가 연주자 개개인과 지휘자로 집중되면서 같은 작곡가의 곡이라도 연주자와 지휘자별로 각각의 스타일로 연주하니 정말로 다채롭다. 그럼 클래식을 접하는 사람들과 소위 팬덤을 형성하는 마니아들은 어떻게 생겨날까. 다양한 경로로 클래식을 접하고 환경에 영향을 받겠지만 일단 악기를 배우게 되면 자연스레 주법과 악곡들을 익히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취미로 스포츠를 배우거나 그림을 배우는 과정처럼, 처음에는 낮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영역이 직접 접하면서 마니아와 팬이 되어간다. 또 우연히 CF나 영화 배경음악으로 쓰인 클래식 악곡을 연주장에서 들으며 ‘어, 이거 나도 들어 본건데’ 같은 묘한 쾌감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그저 있는 척 폼 재는 분야가 아니라 나름 100년의 차트 역주행 기록과 190년의 채굴역사를 가진 검증된 수요가 꾸준히 있는 시장인 것이다.

시대가 발전해서 마냥 퓨전 음식만이 새로 개발되는 것만이 아닌 기존의 전통 음식도 굳건히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전통 음식 또한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음식도 있는 반면, 시대를 거치며 달라진 식재료와 발달된 조리기법에 영향을 받아 조금씩 그 형태가 진화하는 것을 보면, 입으로 접하는 음식과 귀로 접하는 음악은 시대에 따라 바뀐 입맛과 취향을 가장 먼저 반영하는 척도가 아닌가 한다.

이제 색다른 반찬인 클래식을 드셔보지 않겠는가. 좋아하게 되는 채굴자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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