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청포럼] “생색내지 않을게”

김대열 부여고교 교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9.04.04 16:23
  • 기자명 By. 충청신문

교사 초년시절 어느 날 선배 선생님이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쓴다’는 말을 했는데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자장면이나 빵을 사주면서 선배 선생님처럼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정말 담임을 배정 받고 학생들에게 반갑다고 말하며 한 달에 한 번씩은 자장면을 사줄테니 서로 잘해보자고 말하고 엄청난 환호와 웃음 속에서 첫 달 자장면을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해는 그 자장면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청소시간에 청소를 않고 뺀질거리는 학생들이 많아서 “내가 자장면까지 사주면서 잘해보자고 했는데 청소를 안 하면 내가 기분이 좋겠냐? 그러면 다음에는 자장면 안 사준다”고 했다. 4월 중간고사에서 학급 꼴지를 했다. “내가 그렇게 중간만 가자고 했었는데 결과가 이게 뭐냐? 4월 달 자장면은 못 사주겠다.” 5월 체육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다. “야! 공부를 못하면 체육대회에서라도 입상을 해야지 이게 뭐냐? 자장면을 이번 달에는 꼭 사주려고 했는데 못 사주겠다.” 6월 기말고사에서도 신통치 않았다. “야! 내가 너희들에게 십일조를 쓰려고 맘먹었는데 너희들은 받아먹을 자격이 없어 더 이상 못 사주겠다”고 했다. 생색 한 번 제대로 냈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학생부장을 오래 하면서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생생한 목소리로 제일 먼저 들었다. “화장실에 화장지 좀 놔주세요.” 학생들의 말을 교무회의시간에 전달했더니 화장실에 화장지를 놓으면 안 되는 이유가 쏟아져 나왔다. 물티슈 용도로 쓰고 바닥에 버린다. 똥 묻은 화장지를 물에 적셔 천장에 던져 붙인다. 적정량을 쓰지 않는다. 많이 뽑아서 자기 사물함에 넣어 놓는다. 아이들의 할 짓을 정말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이 미리 알고 있으니 잘 지도해 보자면서 화장지를 놓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방송을 했다. 요지는 “많은 염려가 있지만 너희들을 위해서 화장실에 화장지를 놓기로 했으니 앞으로 화장지 잘 쓰고 선생님들한테도 잘해라. 만일 화장지를 잘 못쓰면 곧바로 거둬갈 것이다”였다. 학생들을 믿어보자며 화장지를 놓기는 했지만 염려하는 일들이 일어날까봐 걱정되어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감시하기도 했었다. 작년 1년 동안 연구 활동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돌아 왔는데 화장실에 화장지 케이스는 있고 화장지는 없다. 왜 없을까? 묻지 않았다. 

나는 주로 과학실로 불러서 수업을 하는데 일찍 오게 하고 졸음도 달래고 수업분위기도 좋게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학생들에게 건빵을 주고 있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여지없이 흔적이 남는다. 과자를 허용하면 과자는 입으로 들어가지만 과자봉지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건빵을 먹으면 갖가지 방법으로 먹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남는다. 올해도 어제부터 건빵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염려스런 일들이 생겨 내 스스로 또 중간에 그만 두고 생색만 내게 될까봐 다짐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미리 말했다. 

건빵을 던져 입으로 받아먹다가 땅에 떨어지면 발로 밟아 으깨도 건빵을 줄게. 한 번에 여러 개 먹는다고 입에 가득 넣고 쾍쾍 거리며 수업분위기 망쳐도 건빵을 줄게. 건빵으로 탑 쌓기 놀이 하다가 땅에 떨어져 발로 비벼 버려도 건빵을 줄게. 자기 앞에 있는 것 다 먹고 다른 사람 것 뺏어 먹으러 돌아다녀도 건빵을 줄게. 건빵만 먹고 바로 잠자는 학생에게도 건빵을 줄게. 학교에서 우유를 먹는 사람은 이 시간에 우유를 가지고 와라 그러면 건빵을 줄게. 

이 모든 말들은 한마디로 “생색내지 않을게!”이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