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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공생공사共生共死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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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4.15 13: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꽃샘추위를 견디고 벚꽃이 활짝 폈다. 길가에 노랗게 피어 있는 개나리꽃이 완연한 봄임을 말해 준다. 사정리 저수지를 끼고 수업을 오가는 이 길에서 계절마다 다른 색깔로 위안을 주는 자연을 만난다. 오늘따라 유난히 호수와 나무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지인이 겪은 일상이 준 파문 때문인지도 모른다.

엊저녁 지인과 통화하면서 옆에서 본 것처럼 생생한 그 날의 사건을 듣게 되었다. 그분이 옆집에서 불이 난 줄 알고 신고하면서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옆 집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 올라 가 보니 아궁이에 플라스틱소재로 된 것을 태운 것이 원인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경솔함을 책망하며 헛걸음을 한 소방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해하셨다. 그런 그분에게 ‘선생님같은 분이 계셔서 미리 큰 불을 막을 수 있다’며 불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 했다. 아마 그분에게도 고성산불의 잔영이 남아있었나 보다.

지난 식목일을 앞두고 전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산불이 발생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의 도로변 전선에서 불꽃이 발생하여 고성군에서 속초시 지역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 나간 산불이다. 이 시기에 백두대간의 동쪽 지역은 ‘양강지풍(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성 강풍)’이 매년 반복된다고 한다. 태풍급의 강풍으로 조기진화가 불가능했고, 동시에 넓은 지역으로 화마가 옮겨간 것이다. 전국적 재난 수준인 3단계로 격상하여 고성군 및 속초시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학교도 휴교령이 내려졌고, 통신장애는 물론 정전까지 아수라장이었다. 다행히 정부의 체계적인 총력 대응으로 이튿날 진화가 되었다.

이번 산불로 산림 1,757ha가 불에 탔고, 재산피해는 물론 애석하게도 인명피해까지 있었다. 1996년 4월에도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는 큰 산불이 있었다. 인근에 위치한 육군 사격장에서 불량 TNT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불꽃이 강풍을 타고 번져 나갔다고 한다. 산림 3,834ha를 태운 사건이었다. 산림청과 사고대책본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해당 산림 지역의 토양이 심하게 훼손되어 원상 복귀에만 최소 40년에서 최대 100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먹이사슬이 단절되고 씨앗이 퍼지지 않아 공식적인 소실 면적의 3배인 1만ha에 이르는 지역이 생태학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불에 탄 부분은 이산화탄소 흡수 기능이 사라졌으며, 민통선과 설악산을 잇던 생태 통로도 수십 년 동안 끊어질 것으로 추측되었다.

인재(人災)든 천재(天災)든 위기상황에서 하나로 마음을 모으는 국민의 힘은 대단했다. 유관기관은 물론 전국에서 구호물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뉴스를 통해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 실의에 빠져 있는 이재민을 돕는 각계각층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의 눈에도 그런 모습이 보였나보다. 지난번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을 끝마치고 오려는데, 네팔 학생이 조용히 내게 왔다. 그러더니 이번 산불 피해 지역에 성금을 모아서 보내고 싶은데 방법을 물었다.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정부는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복구는 빠르게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번 훼손된 산림은 화마가 휩쓴 상처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찌할 수 없는 경우를 차지하고라도 우리는 자연을 외면하고, 흠집을 내며 편리한 삶을 추구해왔다. 파괴된 환경으로 푸른 하늘을 마음 껏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철마다 다른 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품어 주던 숲과 나무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상처를 보듬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것이 함께 기대어 살 수 있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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