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청포럼] 독립운동의 중심지: 미국의 보스턴과 대한민국의 충남의 연결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9.04.25 15:55
  • 기자명 By. 장선화 기자
이노신 인문융합대학 교수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 보스턴(Boston)은 미국에서 가장 유서가 깊은 도시이다. 이와 함께 하버드나 MIT와 같은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이 즐비한 교육도시이기도 하며,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하여 현재도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핵심도시이다. 사실 보스턴에는 현재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대학들이 있으며, 연간 약 2천 만 명의 방문객을 맞는다.

사실 미국 최초로 건설된 도시를 언급할 때는 주로 1607년 왕당파 영국인들에 의해 건설된 제임스타운이나 1565년 스페인 군대가 군사적 요새 차원에서 건설했던 세인트 어거스틴을 흔히 거론한다. 하지만 이 두 도시들은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 외에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이에 비하여 1630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던 보스턴은 다른 두 도시들보다 수 십 년 늦었지만 분위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달랐다. 보스턴을 건설한 최초의 거주민들은 영국에서 건너온 800명의 이주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영국왕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찾아서 고향을 등지고 대서양을 건너온 불복종주의자들이며 저항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은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고 해방된 존재임을 외치며 신도시 보스턴을 건설하였다. 그로부터 약 150년이 다 되어갈 무렵인 1775년경, 보스턴이 도시로서의 완연한 모습을 갖추게 되자 보스턴 시민들은 미국 의 독립운동을 위해 가장 먼저 들고 일어섰다. 이들의 봉기는 메마른 초봄의 들불처럼 순식간에 미국 전역의 독립운동으로 번져 나갔으며, 결국 1783년 종주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영국이 통치했던 모든 식민지들 가운데 미국만이 유일하게 영국과 맞서 싸워서 국가적인 독립을 쟁취하였다. 당시 영국은 그 국력이 인류역사사상 최강이라 할 만큼 최전성기에 진입하고 있었다. 이토록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육지 가운데 약 40%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었을 정도인 세계 최강의 영국과 싸워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보스턴에 거주했던 필자에게는 시민들의 독립투쟁과 연관된 색다른 경험이 있다. 우선 보스턴 봉화대이다. 필자에게는 천안 병천의 아우내 봉화대가 연상되었다. 보스턴 봉화대는 영국에 저항했던 독립항전 내내 꺼지지 않고 타올랐었다. 그리고 이제는 독립운동의 승전기념탑이 되어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그 후손들은 해방의 발자취(Freedom Trail)라는 독립운동 방문 코스를 만들어 선조들의 독립운동을 기리며 보전하고 있다. 이 코스가 있는 거리의 바닥에는 페인트로 칠한 빨간색 선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어 보스턴을 방문하는 미국과 세계의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그 빨간색 선만 따라가면 미국 독립전쟁 당시 독립 운동가들 활약하고 미국의 시민병들이 영국 정규군들과 전투를 벌이던 유적들을 모두 돌아 볼 수 있다.

보스턴은 이와 같이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문화 콘텐츠, 하버드와 MIT와 같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교들, 이 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세운 다양한 벤처기업들, 그리고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위대한 사상가 및 정치가들에 의해 수 백 년 동안 도시로서의 특색을 갖추어 왔다.

충남인들은 만주와 간도에 민족의 계몽과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또한 신흥무관학교와 같이 무력에 의한 독립투쟁을 벌이기 위한 사관학교를 세웠다. 천안의 이동녕 선생이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모아 개교하신 신흥무관학교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윤봉길 의사가 20대의 나이에,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예산에 남겨둔 채, 수 억 명의 중국인들도 하지 못했던 의거를 상하이에서 이루어 냈을 때, 비로소 중국의 장졔스나 다른 여러 국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김좌진장군은 청산리에서 일본 정규군과 수차례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다. 논산의 서재필박사는 갑신정변에 참가할 만큼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미국에서 의사가 된 뒤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문을 세웠다.

사실 유관순열사의 비폭력적인 3.1만세운동이나 충남인들의 무력투쟁은 거슬러 올라가면 보스턴에서 시작된 미국 독립운동에 상당히 기인하고 있다. 비폭력주의나 불복종주의는 바로 보스턴의 독립운동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도 간디의 비폭력주의나 중국의 5.4운동 또한 보스턴의 독립운동과 연관성이 매우 깊다.

언젠가는 충남과 보스턴 또는 보스턴이 위치한 매사츄체츠(MA)주를 연결시켜 보기를 희망한다. 충남이 얻고 배울 것이 매우 많을 것이다. 독립운동의 중심지이며 또한 이러한 상호 연결성 위에서 충남을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는데 보스턴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