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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이름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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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5.15 14: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魏書 云 乃往二千載 有檀君王儉 入都阿斯達 開國 號朝鮮 與高同時”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 고조선(왕검조선)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로 “위서에 이르기를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전하고 나라를 개국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고(高)’와 같은 시기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옛 중국에는 ‘고’라는 나라나 임금이 없었다. 고는 요(堯)임금을 말하는데 대자(代字)의 방법으로 고려 3대 정종(定宗)의 휘(諱)가 요(堯)라 이를 피하여 쓰는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임금이나 집안의 어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쓰지(書)않았다. 꼭 써야 할 경우 피휘(避諱) 또는 기휘(忌諱)라 하여 뜻이 같은 다른 글자나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글자로 대신하는 대자(代字)법, 글자를 쓰지 않고 비워두는 공자(空字)=결자(缺字)법, 글자의 획(劃)을 쓰지 않는 결획(缺劃)법, 아예 다른 글자로 바꾸어 버리거나 모양이나 소리까지 비슷한 글자 모두를 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자식으로, 아랫사람으로 부모나 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예절의 정신이다. 이름은 귀한 것이고 몸(身)과 같이 생각했기에 특히 임금, 스승, 조상, 성인 등의 이름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자(字)와 호(號)를 써서 이름 대신 사용했다. 자는 관례나 계례를 치르면서 얻는 이름으로 동년배나 손아랫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고, 호는 자기가 짓거나 남이 지어주기도 하는데 손아래 위 구분 없이 사용했다.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 장군을 삼국사기와 당의 문서에는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했다. 그것은 당 고조가 이연(李淵)이어 연(淵)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세종 임금 시대 류계문(柳季聞)이라는 분은 충청도관찰사를 제수 받았지만 부임을 한사코 거부 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류관(柳觀)으로 임금에게 보고서를 쓸 때마다 ‘忠淸道 觀察使(충청도관찰사) 류계문’이라 써야 하는데 차마 아버지의 이름인 관(觀)자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우의정을 지냈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관(觀)을 관(寬)으로 개명한 후에 부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 5월에 가까운 친척과 가족들이 모여 화목의 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런 기회에 우리 조상들처럼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며칠 전 시내에 나갔다가 “부모님이 주신 이름 석 자 걸고 정직하게 판매 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타이어를 판매하는 매장 위에 붙여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타이어를 교체 할 경우 꼭 그 매장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웃어른의 이름을 말 할 때 “0자, 0자 입니다”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우리 아버지 이름은 000이요”하는 아이들을 보면 좀 섭섭한 느낌이 든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나 장관 · 국회의원 혹은 지역 지자체장의 이름을, 학생들은 선생님의 이름에 직함도 붙이지 않고 마구 부르는 모습들을 보면 씁쓸한 생각도 든다. 또한 그렇게 부름으로써 자신이 대단한 양 뻐기는 모습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현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SNS상에서는 닉네임을 만들어 사용하는 일이 보편화 되어있고, 연예인들은 예명이라고 하여 자신의 본명을 나타내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하면 가명에 자신을 숨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일까? 가명에 숨어 악성댓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그래서 선플 달기 운동도 전개된다. 익명의 전자메일을 잘못 열면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조심하라는 안내문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가끔은 학교 주변에 버려진 공책장과 시험지에서 학생들의 이름이 쓰여 진 것을 본다. 자신의 이름을 내팽개치는 것은 자신을 내팽개치는 것은 아닐까? 이름은 나를 대신하는 내 몸이라 생각하여 소중하게 하는 생활을 하면 좋겠다.

이제 반이 지난 5월, 가정이 화목해지고 후세들이 꿈을 키우는 푸르른 달에 조상들처럼 피휘(避諱)는 못해도 자신의 이름과 웃어른, 친구들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을 가져 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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