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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옛 황국신민서사비였던 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 앞에 표지석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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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5.20 16:52
  • 기자명 By. 최영배 기자
(사진) = 現 정지용생가 돌다리 앞에 설치된 표지석  [사진=옥천군제공]
現 정지용생가 돌다리 앞에 설치된 표지석. (사진=옥천군 제공)

[충청신문=옥천] 최영배 기자 = 중·일 전쟁의 서막을 연 1937년 옥천군의 창명보통학교(現 죽향초등학교) 아침 조회시간. 이 학교의 교장 요시다 이치로(吉田一太)와 학생 1000명은 조회에 앞서 아래의 문장을 크게 외치고 있었다.

“私共ハ、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私共ハ、心ヲ合ワセテ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私共ハ、忍苦鍛錬シテ立派ナ強イ國民トナリマス(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일제가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외치며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시작한 1937년부터 패망한 1945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맹세문이 울려 퍼졌다.

학교는 물론, 관공서와 회사 등에서 조회를 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항상 이 맹세문을 낭송해야 했다.

일제는 이 황국신민서사를 낭송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국 곳곳에 이 맹세문이 적힌 비석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인 죽향초등학교에서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

이 비석은 광복 후 통일탑으로 불리 우다 1993년에 비로소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것이 알려졌다.

이에 군은 이 비석을 1994년 구읍에 있는 정지용생가 앞에 눕혀 놓고, 생가를 오가는 방문객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돌다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 돌다리에 대한 어떤 정보나 안내가 없자, 군은 구체적인 설명을 담은 표지석을 최근 세우게 됐다.

원형으로 된 표지석에는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옥천 죽향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황국신민서사비’다”라는 글귀와 함께 “광복 후 글자를 지우고 통일탑으로 사용되다, 1994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며“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 학생들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한 내용이 새겨졌단 비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다“라고 적혀 있다.

관내 학생 및 군민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느끼고 절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관내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군민들이 이 아픈 역사를 교훈삼아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이 내용들을 알릴 수 있는 표지석 설치를 늘려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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