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리뷰] 손 없는 색시 - 상실의 슬픔 인정하고 담담히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치유’

8세 이상 관람가… 비속어, 시대반영 못한 성 인식 아쉬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9.05.28 10:41
  • 기자명 By. 이하람 기자
대전예술의 전당 손 없는 색시 공연 모습. 몸통이 나뭇가지로 표현된 살구밭 주인과 할아버지 얼굴을 한 색시의 아들.(사진=대전예당 제공)
대전예술의 전당 손 없는 색시 공연 모습. 몸통이 나뭇가지로 표현된 살구밭 주인과 할아버지 얼굴을 한 색시의 아들. (사진=대전예당 제공)

[충청신문=대전] 이하람 기자 =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를 받은 적이 있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일까, 혹은 잃은 것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작가는 이 물음에 ‘진정한 치유는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결여를 인정하는 순간 좀 더 완전해진다는 것.

지난 24일 오후 3시 대전예당 앙상블홀에서 공연된 인형극 ‘손 없는 색시’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어 돌아온 것으로 시작된다.

슬픔에 빠진 색시는 뱃속에 아이를 밴 채 남편의 시신을 쓰다듬으면서 눈물로 나날을 보낸다. 그런던 어느 날 색시의 손은 ‘이제 그만!’을 외치며 색시를 떠난다. 더 이상 색시의 슬픔을 만지기 싫다는 것. 모든 걸 놓고 세상을 떠나려는 색시에게 할아버지 얼굴을 한 아이가 태어난다. 두 모자는 손을 찾기 위해 함께 떠나는 과정에서 그 상처를 치유하고, 인정하게 된다.

상처와 치유라는 메시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손 없는 색시가 8세 이상 관람가라는 것.

15세 미만 어린 관객들도 많았던 것을 감안했다면 비속어, 그릇된 성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들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바이 대갈통’, ‘아바이가 뒈졌어’, ‘지랄하네’ 등 대사는 아이들과 함께 보는 내내 불편했다.

게다가 살구밭 주인과 붉은점 아들의 ‘오줌 멀리 싸기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네 색시는 내가 갖는다’는 말 등은 여성상을 왜곡시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살구밭 주인 등 남자들이 남성성을 강조하며 아랫도리를 돌리는 춤도 희극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기에는 과했다.

손 없는 색시는 크게 남편의 죽음과 손이 사라지고 아이가 태어나는 ‘도입부’, 손을 찾아 떠나는 중 살구밭 주인과 마주치는 ‘제1전개부’, 묘지기 할멈을 만나는 ‘제2전개부’, 전쟁이 있었던 땅에서의 이야기인 ‘제3전개부’, 극의 막바지인 신비한 우물에서의 일을 다룬 ‘제4전개부’, 아이가 젊음을 되찾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종결부’로 나뉜다.

그런데 극 중 ‘똥’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는 단골 소재다.

특히 제2전개부에서 제3전개부로 넘어가는 연결부분은 다른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할아버지 얼굴'을 한, 붉은 점 아들이 손 없는 젊은 색시의 똥을 닦아줬다는 문장은 손이 없는 불편함을 굳이 ‘똥’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단어가 희곡 요소로 등장하면서 엄마이자 여성의 수치심을 대수롭지 않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제2전개부 후반쯤부터 극 전개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묘지기 할멈 집에서 술을 발견하고 취한 아들에게 ‘갓난쟁이 주제에 술은 쳐먹냐?’, ‘어무이도 한 잔 해’ 등의 대사 역시 무리수로 보인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작가가 꿈을 꾸면서 작업한 듯, 극 전개가 ‘의식의 흐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설화를 모티브로 함으로써 극 내용이 비현실적인 탓도 작용했을 것이다.

극이 늘어지니 각각의 내용이 따로 노는 듯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처를 인정하는 진정한 치유’라는 메시지 전달은 다시금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도 신선하다. 특히 연출이 빛났다. 살구밭 주인의 몸을 나뭇가지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연출가는 나뭇가지 몸을 “사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역할이고 형태”라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쩌면 색시에게 있어 가장 찬란했을 한 때의 ‘조명’.

남편이 전쟁통에 보낸 아기의 옷, 책, 기저귀를 풀어보며 기뻐하는 그 장면을 조명 감독은 ‘세상 가장 환한 빛’으로 잘 잡아냈다.

바로 다음, 남편이 죽어 돌아온 장면에서의 ‘조명 아웃’은 감독의 서비스.

배우의 기운과 연기도 좋았다. 그 건강한 기운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기이한 분위기의 라이브 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한층 더 생동감 있고 매력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좋은 배우와 음악, 연출 재료들을 가지고 관객을 100% 끌어당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흡인력 있는 극 전개와 적절한 희곡적 요소만 갖췄어도 훨씬 제 값을 했을 무대였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