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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찔레꽃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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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6.04 18: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산책길, 하얀 저고리 입은 찔레꽃 무더기에서 꽃잎이 빛난다.

소박하고 정갈한 꽃잎하나하나에서 고향의 냄새가 상그럽게 퍼진다. 산들 바람에 홀려 냇둑위로 날아다니는 연두색 향기를 맡으며 나는 어느새 하얀 그리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어디쯤에서부터 기억일까. 

해가 뜨고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할 때 고향집 마루에 누워 뻐꾸기울음을 감상했고, 뻐꾸기 울음 따라 동무들 손잡고 뒷동산에 올라 산 버찌를 땄다. 하교 후엔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보다는 뒤란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꽃목걸이를 만들었고 토끼풀 꽃으로 꽃시계를 만들어 친구의 팔목에 채웠다. 

이맘때 찔레꽃이 피면 나는 지독한 마음의 몸살을 앓으며 수몰지역이 된 고향의 추억을 또 꺼내본다. 

소담스런 찔레나무 덤불에서 잠시 멈춰 통통한 찔레 하나 꺾어 먹는다. 그 맛이 아니다. 연한 찔레 순의 달달한 맛은 어디가고 들큼하니 낯선 맛이다. 학교 갔다 오가는 길가 풀 섶에서 뽑아먹던 뽐 비기의 달착지근한 맛처럼 이제 마음으로만 느껴야 하는 걸까. 어릴 적 풋내를 씹던 아련한 추억의 맛, 사무치도록 그리운 맛으로만 느껴야 하나보다. 

하얗지만 분홍빛이 살짝 도는 여린 찔레꽃잎은 꾸미지 않는 민낯의 소녀처럼 청초해 보이고, 찔레꽃 가시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열네 댓살의 여학생 같기도 하다. 꼭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 때의 동갑내기들 같다. 검정 교복을 입은 우리는 항상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를 달아 한껏 멋을 부렸고 어떤 친구는 교복바지를 나팔로 만들어 입었다가 규율부에 걸려 된통 벌을 받기도 했다. 남녀 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는 이성에 여간 관심이 많았을까. 자존심을 세우느라 남학생들이 말 부칠 엄두도 못 내게 마음에 가시를 세운 듯 새침하게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래끼리는 누가 말만 하여도 까르르 웃던 철부지 소녀들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좀 까시러 지기는 했지만 찔레꽃잎처럼 순수했고 인정스러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한참 지나오니 고향 친구들이 보고 싶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삶에 열중하느라 힘들 텐데 지친 심신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오면 고향집은 없어졌어도 고향 꽃은 두 손 들어 환대해 줄 텐데. 생활에 지친 나도 지금 여기서 나에게만은 시골 색시 같은 꽃에게서 산골아이가 되어 위로를 받는 중이다.

찔레꽃은 고향을 그리게 하는 꽃, 친구를 그리게 하는 꽃,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꽃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 다가와 마음을 쉬게 만드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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