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향기의 기다림
[아침을 열며] 향기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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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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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 건축학과 겸임교수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은 즐거운 일이지만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그릇되거나 옹졸한 소견들이 가는 길을 훼방하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들판에서 노닐고 싶은 어울림에의 지향만큼 은밀한 생을 즐기고, 자기 둘레를 풍부한 고독으로 감싸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 열망은 현실적인 욕망이기 이전의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타고 나온듯한 유전자의 명령을 따라가고 싶은 마당에야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더 말하랴.

음성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 수필가는 중견작가로 ‘황혼의 여울목’ 수필집에 이어 『뜬구름 영을 넘어』 두 번째 수필집을 최근에 출간했다. 2015년 충북문인협회장으로 재임할 때 충북문학상 공로상을 수여한 일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감격이듯 삶을 올곧게 수놓는 분으로 평소에 존경하는 문단의 어른으로 섬겼다.

더욱이 이번 출간은 아흔을 바라보는 87세, 무엇보다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어서 『뜬구름 영을 넘어』 출간기념회장은 감동의 물결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의 인품을 말해주듯 모처럼 만난 음성문우들이 함께하는 행사장은 모두 정겹고 겸손의 걸음걸음이 장내를 흐뭇하게 하였다.

60편의 글속에는 이웃을 향한 특별한 배려와 사랑이 살아있고 학우나 군우 등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질 인연들에 대한 글이 마음을 적신다. 연세가 높은 분임에도 옛 인연을 찾아 만남을 주선하곤 한다. 가깝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발길은 아름답게 살아온 선량의 인생을 노래하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순간을 소중히 하게 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지고 변하는 현실에서 어쩌면 이기적인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필름의 영상처럼 스친다. 이러한 노작가의 행보는 좋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가 보다. 이웃과 동료의 우정은 인간애를 나타낸 휴머니즘이다.

그 외에도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다각도에서 천착하고 비평하는 예리한 안목으로 시대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이요, 아버지의 상을 보여주는 가족이야기로 자녀들의 효도, 가족 사랑이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자녀들의 효심이 글을 통해 더 아름답고 훈훈하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요즘 가족이 해체되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우리 현실에 귀감이 되는 가정이야기는 마음을 훈훈함으로 채워주기도 한다. 행간의 울림마다 쓸쓸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등불로 마음을 환하게 비춘다.

이렇듯 작품의 근간이 되는 사상에서 유 수필가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라는 사실이 와 닿는다.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영성의 향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글의 편 편마다 녹아있는 신앙 속에서 수필작품은 더욱 빛나고 거룩함에 머무르기도 하다.

사실 글은 문자의 조합이지만 영혼의 깊이에 의해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는 이미지 형상 속에는 작가의 고뇌가 필요하고 일상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유 수필가의 글을 접하면서 수필이나 시작품 등 문학작품에 대하여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된다. 문학이란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그 자체를 그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되 현실은 아니지 않는가. 현실 그 이상의 것을 가치 있게 형상화 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기법 또한 운문과 산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산문은 사실을 서술하고 이치를 이야기 하며 사리(事理)의 핵심을 찌르되 그 빈틈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운문은 직설적인 것을 꺼리고 한 사람이 노래하여 세 사람이 감탄하는 음을 귀하게 여긴다. 필자 주변에도 시를 쓰는 시인들이 많이 있는데 아주 짧은 몇 줄의 시어로 철학과 감성과 나아가 삶의 단면을 노래하여 강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유 수필가의 수필이 전통의 고루한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도 이에 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 된다. 대개 나이가 들면 그러한 답답함에 젊은 독자들의 시선을 멀게 한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그런 때가 묻어있지 않고 활기차면서도 언어의 구사가 명료하여 물 흐르듯 수필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풋풋한 예술성이 앞으로 더욱 익어갈 것을 기대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게도 한다.

유 수필가의 출간기념 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여운을 안겨주는 소이(所以)가 바로 인품과 영성의 향기가 어우러진 한 송이 삶의 꽃을 피워낸 때문이다. 우리 곁에 수많은 생의 굴곡을 잘 건너온 따뜻한 한 철인이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그것은 억지로 꾸며서 되는 일이 아니고 계획해서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유 수필가의 인사말에서 참석한 모든 사람이 숙연함에 잠긴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소나 돼지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감사합니다. 나는 팔십여 평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하고 한편으로는 피해를 보아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였지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감사의 정을,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정녕 그런 것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의 잘못을 판단하기에 앞서 용서로써 마음의 앙금을 깨끗이 털어버리는 마음가짐이 더욱 행복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잘못한 이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때 우주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풍성한 축복이 내릴 것이라는 유 수필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나의 내면에도 커다랗게 자리한 앙금을 쓸어내야 한다는 순한 깨달음에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달빛이 워낙 밝아서 그런지 은가루를 뿌린 듯한 별의 세계는 죽은 듯 자취를 감추었고 샛별 같은 큰 별들만 드문드문 깜박이고 있을 뿐, 모든 별이 달의 밝음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치를 다시 한 번......’

작품 중 ‘새벽달’의 일부를 옮겨 보았다. 삶의 굴곡이 깃든 매일을 살면서 우리는 가끔 별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멀고 먼 그러나 늘 그리운 별처럼, 향기를 지닌 한 사람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 향기는 온 누리를 감싸고 누구에게나 나누어주려 고운 발걸음을 쉬지 않는다. 오래 우리 곁에 머물 것을 소망하며 그 분의 따듯한 손을 또 한 번 잡아보고 싶은 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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