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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파로호(破虜湖)와 고구려의 경관(景觀)

이재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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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6.13 14:5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재준 문학박사
이재준 문학박사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보호하고 지키며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보답한다는 의미 있는 달이다. 이 6월을 무색하게 하는 정부의 김원봉 띄우기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최근 파로호 명칭 개명 논란도 암울한 내일을 걱정하게 한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강원도 화천군의 북한강 협곡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다. 파로호의 명칭은 6・25전쟁 당시 1951년 5월 화천일대에서 중공군을 크게 이겼다고 하여,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깨뜨릴 파(破’)와 ‘오랑캐 로(虜)’자를 써서 파로호라고 명명하였다. 당시 국군 6사단은 중공군 187, 188, 189사단과 용문산 일대에서 대적하였다. 6사단은 미군 5개 포병대대의 화력지원과 항공지원에 힘입어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을 물리쳤다. 중공군은 국군의 추격을 피해 80여 ㎞를 도망가다가 화천저수지 일대에서 길이 막혀 약 2만여 명의 피해를 입고 궤멸되었다. 물론 국군도 피해를 입었다. 1964년도 전선을 지키던 소대장 한명희는 파로호 인근에서 국군이 사용했던 녹슨 카빈소총과 구멍 뚫린 철모를 발견하고 숨져간 국군장병을 기리는 가곡 ‘비목(碑木)’을 지었다. 처절했던 전투현장이자 길이 기억해야 할 전승지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강원도에 파로호가 냉전의 상징이라며 명칭을 대붕(大鵬)호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에 ’남북 강원도 협력회‘와 ‘대붕회 사람들’은 파로호 이름을 대붕호로 바꾸고 비극의 호수를 ‘평화와 상생의 공간’으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대붕호는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파로호 명칭 변경문제를 처음 꺼낸 이는 주 중국대사를 지낸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그는 중국 관광객이 불쾌하게 생각하며, 중국 외교부도 ‘파로호 명칭을 바꾸라고 요구한다.’고도 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589년 중국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는 3차에 거쳐 고구려를 공격하다 대패하여 618년 멸망하였다. 고구려는 수나라 병사들의 수십만 해골을 묻은 곳에 제사를 지내고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경관(景觀)을 세웠다. 수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고구려의 전승기념비 경관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당나라는 631년 광주사마(廣州司馬) 장손사(長孫師)를 보내 경관을 헐어버렸다. 그리고 당나라는 645년부터 고구려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전승기념비나 전승을 기념해 생겨난 명칭은 그 나라의 자부심이다. 과거 외적의 침입을 막아냈다는 자신감이며 미래 호국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서울 송파에는 인조가 청태종에게 ‘3배 9고두’의 굴욕을 당한 삼전도비가 있다. 치욕의 역사도 교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승전의 역사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고구려의 전승기념비 경관이 당나라에 의해 헐리고 반세기도 안 되어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6・25전쟁의 최대 승전지 파로호 명칭과 기념비를 지워버리려는 세력이 주도하는 이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우려된다. 중국 관광객이 불편해 하고 중국 외교부에서 요청한다고 해서 파로호의 명칭을 바꿔야 한다며 평화논리를 펴는 언론이나 이를 추종하는 이들의 국적이 의심스럽다. 그와 같은 논리라면 곳곳에 세워져 있는 6·25전승 기념물이나 현충탑도 북한을 자극할 수 있으니 다 헐어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호국 보훈의 달에 논란이 되는 파로호 명칭과 기념비가, 당나라에 의해 헐리고 사라진 고구려의 승전기념비 경관의 운명과 같아 이 나라의 장래까지 걱정이 된다. 평화를 가장하며 파로호를 파내려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평화는 승전의 역사를 기억하며 모두의 힘을 모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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