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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물들이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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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6.17 13:1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이다. 아침을 먹고 뒷산에 올랐다. 6월의 산은 벌써 초록과 초록이 어우러져 갈맷빛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들을 보니 그 조화가 아름답다. 함께 하면 무엇이든 새로움을 만든다. 소나무는 오르는 덩굴을 거부 하지 않았고 덩굴은 나무를 타고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에서 내려와 마시는 냉커피 한잔이 그래서 오늘 따라 유난히 맛있다.

천 염색을 했다. 그 동안 인터넷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몇 개 샀었다. 착한 가격으로 카페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올리는 옷들이다. 주로 흰색 인견이 눈에 띄었다. 흰색 인견은 부드럽기도 하거니와 내가 원하는 색으로 물들일 수 있어서 좋다.

천연염색 염료도 같이 구입해 두었다. 원피스와 긴 재킷 염색에 들어갔다. 밤색 계통의 아선약과 명반을 섞어 오랫동안 주물럭거렸더니 붉은색을 머금은 황금빛이 나왔다.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 빛깔에 취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빛바랜 옷을 꺼내왔다. 그런데 그게 오늘의 가장 큰 실수였다. 거기서 멈췄으면 딱 좋았을 것을 모시 재킷과 흰색바지를 꺼내와 새 옷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염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반 다이렉 염료를 이용했다. 일반 다이렉 염료는 선명하고 빨리 염색이 되어 좋지만 색상선택을 잘 못하면 돌이킬 수 없어 후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랑색으로는 바지를, 초록색으로는 재킷을 염색했다. 모시 재킷은 노랑에 가까운 연두색이었는데 초록에 담갔더니 바탕을 이루고 있던 색은 온데간데없고 진초록으로 염색이 되어 난감했다. 찬물에 아무리 주물러 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천연염료인 아선약은 염색을 하고 그 위에 두 번, 세 번 염색을 하면 내가 원하는 빛깔을 찾을 수 있다. 베란다에서 걷어와 두 번째 염색을 하고 다시 세 번째 염색을 하려고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어디서 묻었는지 파랑색 염료 몇 방울이 아약선 으로 염색한 원피스에 묻어 공들인 것이 헛일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묻었는지 모르겠다. 소목이나 자초 분말로 다시 염색을 해야만 그나마 같은 계통이니 복구가 될까 싶은데 속상하고 지쳐서 염색 도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스며드는 천연염색은 여러 번 염색을 할수록 아름다운 색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강한 다이렉 염색은 한번 선택으로 끝난다. 그래서 잘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천연 염색은 실수를 해도 다른 색을 사용하면 그 위에 또 다른 색이 더해져 생각하지 못했던 오묘한 색이 된다. 염색을 할 때 면 어울림의 미학을 거기서 발견한다. 우리 사는 세상 이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일어난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이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거기에 이희호 여사의 죽음 후 수능 만점 서울대 학생의 SNS 글로 인터넷이 시끄러웠다. 또 다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과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아야만 고운빛깔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실감을 했다.

세상은 온갖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되어 살아간다. 보통의 우리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천연염색에 사용되는 색상이다. 색상과 색상이 어우러져 때로는 오묘하고 때로는 산뜻하다. 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색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론 강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부드러움으로, 다정함으로, 다름을 인정한 배려로 우리의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함께하는 세상은 더 아름답다.

오늘 못 다한 염색은 심사숙고해서 색상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빛깔을 내도록 여러 번 물들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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