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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유튜버와 전기수(傳奇叟)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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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6.24 13: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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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에 등장한 전기수라는 직종의 정체는 이야기꾼이다. 홍길동전등의 한글소설이 등장하자 장터에서 이를 읽어주고, 삼국지 같은 중국고전을 전하기도 하며 지금의 영화관처럼 장르별 문학을 전파하는 역할이었다. 서양에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시대에 음유시인이라고 해서 여기에 노래와 시 낭독까지 포함했다. 주로 오디세이나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대중이 좋아하는 영웅담 등이 주요 레퍼토리였고 우리나라의 판소리 같은 1인극 모노드라마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맹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기에 이만한 문화생활도 없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꾼들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대부분 전업 이야기꾼으로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해서 여러 잡일을 겸했는데, 정작 이야기 마당에서도 안팎을 구분 짓는 경계를 지닌 공연장이 딱히 없는 장터라는 개방된 공간에서는 입장료라는 개념이 있을 리가 없어서,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간단한 노래를 곁들여 관심을 끌어 군중들이 몰리면, 어느 정도의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뜸을 들이거나 이야기를 끊었다. 그러면 이를 듣던 구경꾼 중 누군가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돈을 걷어 건네주고 나서야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의 중간광고 CF에 해당하는 수익구조다. 유명한 전기수나 음유시인들은 양반댁이나 귀족가문의 대소사에 초대되어 그 명성을 이어갔고, 당연히 수익이 보장된 공연공간에서는 선불을 받았으니 중간광고 같던 추가 요금 징수는 없었다.

이들의 탁월한 표현력을 전하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진다. 정조실록에는 임경업전에서 임경업을 죽인 악역 김자점으로 연기하는 부분에서 한 관중이 화가 나서 풀 베던 낫으로 전기수를 죽였다는 사건기록이 남아있고, 중국에서는 경극 공연도중 실감나게 조조 역을 연기한 배우가 분노한 관객에게 맞아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걸 보면, TV 일일드라마 악역을 맡았던 배우가 식당에서 식당할머니께 별안간 뒤통수를 맞았다는 이야기와도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겠다.

조선후기에나 와서 전기수가 등장한걸 보면 우리 역사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생활을 하는 문화공간을 따로 갖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성리학 바탕에 농업을 국가의 근간으로 삼아서 예술인을 천민처럼 취급했다고는 하나, 그보다는 예술자체가 경제활동으로 인정되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양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수익구조는 오직 관객으로부터 받는 관람료밖에 없었다. 지금과 딱히 다를 바 없는 구조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예술인들은 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는 형식을 지닌 플랫폼의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일단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지고 나서야 손익을 논할 수 있기에 플랫폼을 지닌 주체가 곧 공연이나 전시 등 수익을 낼 수 있는 ‘갑’이 되었고 예술인들은 ‘을’이 되었다. 새삼 예술인 재능기부나 공연계에서의 고질병인 갑을 관계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공연의 플랫폼을 지니는 여건조차도 역사상으로는 계속 자본논리에 귀속되어온 것이 사실이니까.

현대의 트렌드에 영향을 끼친다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주된 플랫폼은 유튜브다. 기존의 제한된 플랫폼에서 제약받아온 사람들이 이탈해 유명 유튜버들로 자신들만의 트렌드를 구축하며 시장을 창출해냈다. 이들이 기존의 플랫폼에서 빠져나온 이유는 창작물의 존중이었다. 자신의 창작물을 갑을관계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원했고,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기존의 대본으로 지상파나 유명채널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할 때면 제작사 측에서 캐스팅이나 대본에 개입을 해서 갈등요소가 되고 있던 상황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트리밍 업체가 대본이나 캐스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작을 보장하자 이제는 창작자들이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기위해 그쪽으로 몰리고 있단다.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은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다. 먹히고 있다는 반증이다.

인간들은 꾸준하다.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것이 인간만이 지닌 문화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 중 대표적인 것이 예술인이라고 한다. 인간만이 스스로 고민하는 정체성에 관한 직업들은 인공지능으로도 대체불가인 것이다. 경제논리의 잣대로 예술적 창작을 구분하고 휘둘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창작은 오늘도 꾸준히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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