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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올레(ole)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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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08 17: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7월의 뜨거운 기운이 저녁나절에도 식을 줄 모른다. 공연장에는 연주회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다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살굿빛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단원들이 입장하면서 제 자리를 찾아 서 있고, 마지막으로 지휘자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맑은 피아노 소리에 맞춰 낮은 선율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합창을 하는 이들 중에 평소에 알던 반가운 얼굴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닌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맡은 부분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각자의 음색을 서로에게 맞추고 자신을 뽐내지 않는 화음이 신기했다. 여성의 고운 음과 남성의 굵은 음이 어우러지고, 낮고 높은 음이 조화를 이루었다. 노랫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고 가슴까지 전해졌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음악협회에서 주관하는 제1회 음성군 합창단 정기 연주회 초대장과 수시로 보내오는 관람 문자를 보고 망설였다. 따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민 끝에 연주회를 가게 되었다. 생각과 달리 기분 좋은 감성이 전달되었다. 합창단이 ‘반달’이나 ‘고향에 봄’을 부를 때는 입을 벙긋거리며 따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나와 관객과 함께 신나는 가요를 부를 때는 어깨도 들썩거렸다.

연주회에는 합창 외에 다른 공연도 있었다. 묵직한 첼로를 자그마한 남성이 연주할 때는 클래식에 문외한인지라 무슨 곡인지 잘 몰랐는데, 중간쯤 듣다보니 편해졌다. 첼로의 선율만 조용히 울려 퍼지는 공연장에서 다른 사람들도 소리 없이 듣고 있었다. 뒤 이어 바리톤의 성악가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첫 곡을 힘차게 부른 후 그는 관객과의 소통을 유도했다. 그의 요구에 의자 깊숙이 앉았던 몸을 앞으로 내밀고 집중했다. 다음 곡을 부를 때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서 빨간 포켓스퀘어(pocket square)를 꺼내어 위로 들 때마다 ‘올레’라고 외쳐 달라고 했다.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를 정열적으로 부르며 관객과 함께 했다. 갑자기 내가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집중이 되었다. 조용한 공연장에서 관객의 몫을 제대로 해 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어린이 합창단의 순서가 되었을 때는 입장할 때부터 주변에서 ‘귀여워 귀여워’ 하는 소리가 나왔다. 연주회 팸플렛을 살펴보니 작년에 창단된 음성군 소년소년 합창단은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앞자리에는 품 안에 쏙 들어 올 정도의 작은 아이들이 섰다. 무대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른들과는 다른 음색의 맑고 고운 음성이 마음까지 정화시켰다. 특히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라는 선곡이 마음에 와 닿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들려주는 노랫말은 내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었다.

무대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단어 하나가 맴돌았다.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성악가의 손끝을 따라 소리 지르던 ‘올레(ole)’이다. ‘올레(ole)’는 스페인어로 '힘내라!', '잘한다!', '좋아!'라는 의미의 감탄사라고 한다. 국악으로 보면 출연자의 흥을 돋우는 추임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소극적으로 공연을 보기만 하다가 소리한 번 같이 지른 것뿐인데도 한 시간 남짓의 연주회를 즐길 수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끌려가듯이 지냈다. 그런데 오늘 마지못해 보게 된 연주회가 기운을 돋게 한다. 가끔은 문화적 감성이 지친 삶을 쉬게 해주기도 하나보다. 글을 읽을 때도 쉼표가 필요한 것처럼 생활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해 봐야겠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추임새가 필요한 때이다. 내 삶이여 다시 한 번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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