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침을 열며]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9.07.14 10: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본격적 산업화 이전의 시대에는 법이나 행정 등의 분야를 공부해 관료가 되는 것을 출세라고 표현했다.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 고위직 관료가 되면 가문의 영광이요, 본인 인생에 탄탄대로가 열린다고 믿던 시절이다. 그래서 어느 집이든 자식들에게 법이나 행정을 공부해서 벼슬길에 오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문했다. 산업화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경영과 경제 등 상경계열 학문의 인기가 부상했다. 더불어 공학도 인기몰이를 시작해 엔지니어가 되라고 꿈을 주문하는 시대가 되었다. 벼슬도 좋지만 돈이 좋더라는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 누구라도 배를 곯는 이는 없다. 기본적 생활은 보장받는 시대가 됐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품위와 품격으로 옮겨가고 있다. 보다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며 교양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나 철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 분야와 더불어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고 관련 교양강좌교가 성황이다. 하지만 웬일인 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인문이나 예술분야 학문은 교양의 도구로만 여기는 풍토가 여전하다. 인문, 예술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려는 이들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박식하면서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지만 인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쓰고 역사나 철학 따위를 공부해서는 남들만큼 풍요롭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인문분야를 전공하려는 이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이나 첨단과학을 전공해 호의호식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고 삶을 데커레이션 하는 수단으로 인문학을 교양 선택하고 싶은 것이 현대인들의 계산법이다.

기업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인문학의 무궁무지한 상상력을 기술에 접목하고 소비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지만 생산적이지 못한 인문 분야 전공자를 사원으로 채용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직접적인 관련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박식하면서도 품격 있고 상상력과 감수성도 풍성한 직원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첨단과학분야 전공자들에게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인문학은 교양 수준에서 조금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교양학문이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융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문학 전공자들은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이다. 기업은 아직도 초기 산업화 시대의 사고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초우량 기업들이 인문학 전공자들을 우대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기업들은 여전히 엔지니어들과 상경계열 전공자들만이 돈을 벌어올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이런 풍토 속에 여전히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취업률을 끌어내리는 천덕꾸러기 학문 취급을 당하고 있고, 기업들의 인문학 전공자 천대도 여전하다. 인문학의 사회적 열풍 속에서 학문적 천대가 중첩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있다.

한국은 서구사회로부터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들보다 극심한 배금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모든 가치를 금전적 척도로 측정하려는 사고가 온 국민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도 돈을 기준으로 삼고, 종교를 평가하는 것도 기준은 돈이다. 문학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인식한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본질인 진선미(眞善美)의 가치를 배금주의자들은 한낱 사람을 꾸미고 치장하는 장식으로만 생각한다.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이제 인문학이 제 가치를 인정받을 때도 됐는데 여전히 온 국민이 배금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인문학을 천대하고 있다. 인문학은 인문주의적 사고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진짜 인문학 열풍은 아직 불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키워드

#인문학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