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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그녀의 목소리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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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15 13: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책읽어주는 여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1994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꽤 오래전 영화이다. 독특한 소재로 그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고 나 또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영화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이 하반신 마비의 어린 소년, 괴팍한 장군의 부인, 외로움에 절여 사는 중년사업가, 퇴임한 판사 집에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영화였다. 인간의 고독과 내재 된 욕망을 표현하는 영화의 줄거리나 영화가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볼 당시만 해도 책은 내가 스스로 읽는 것이지 누가 읽어주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이나 몸이 아픈 사람 등 특수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보통의 우리는 당연 눈으로 읽어야 재대로 그 내용을 파악 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영화 속의 일로만 여겼다. 그런데 요즘 나는 매일 밤 책읽어주는 여자, 책 읽어주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빠져든다.

불면증이 뭔지를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눕기만 하면 새근새근 잘 잔다고 남편이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불면증에 좋다는 처방을 다 해보아도 쉬 잠들지 않았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잠잘 때 듣는 음악을 몇 시간씩 들어도 말똥말똥 해서 새벽을 맞고는 했다. 그러다 발견 한 것이 책 읽어주는 여자, 책 읽어 주는 남자라고 올라오는 영상이었다. 잠 안 오는 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는 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고 놀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야기를 듣는 도중 스르르 잠들었을 때의 기억, 밤새 책을 읽다가 엎드려 잠들고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고는 했던 중, 고등학생 때 느꼈던 그 감성이 되살아났다.

기억도 가물가물 한 한국 단편 소설부터 최근에 읽었던 책과 또 읽고 싶었는데 그냥 지나쳤던 책들을 매일 밤 듣고 있다. 처음에는 잠을 자기 위해 들었는데 지금은 그 자체를 즐긴다. 지난 보름에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듣는데 마치 내가 허생원이 된 듯 하고 동이가 된 듯 설레 책 듣기를 끝내고도 오랜 시간 달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또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들을 때는 나도 17살의 주인공 세실이 되어 그 책을 읽었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며칠을 분위기에 취해 지내기도 했다.

책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 좋은 점이 있다. 읽어 주는 사람이 책의 내용에 따라 감정을 잔뜩 불어 넣어 한껏 고조 된 목소리로, 때로는 쓸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목소리로 읽어내려 간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내가 직접 읽었을 때 놓치기 쉬운 세심한 면까지 그려지게 된다. 남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즐거워 할 줄은 몰랐다. 인터넷의 발달로 e북이 유행해도 책은 배 깔고 엎드려 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 하며 종이책을 고집했는데 듣게 되는 책을 좋아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새로운 경험이며 기분 좋은 일이고 불 끄고 누워 유튜브 동영상을 듣는 재미에 빠져 잠자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나이에 비해 목소리가 젊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고 발음이 정확해서 전달을 잘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장점을 살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일이 좋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데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책읽어주는 봉사를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양노원이나 요양원등을 찾아가 책을 좋아했으나 책을 읽을 상황이 아니어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책을 읽어주는 그런 봉사를 하고 싶다. 삶의 의욕이 꺾인 그들도 지금의 나처럼 추억을 소환하고 즐거움을 맞보며 내일을 기다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밤에도 나는 어김없이 감미롭게 책을 읽어주는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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