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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기수 문화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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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24 14: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검찰총장 임명에서 기수(期數)가 파괴되었다고 시끄럽다. 선배 기수들이 후배 기수 총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용퇴를 한다. 후배 기수 아래에서 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기수? 사법연수원 기수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연수를 받게 되는데, 그 연수원 입학 기수를 뜻한다. 사시 몇 회, 기수 문화가 강고하다. 기수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인성이 좋든 나쁘든, 실력이 낫든 못하든, 기수가 절대기준이다. 검사동일체,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관행이다. 기수는 폐쇄된 그 조직에서 통하는 서열이지 일반 사회통념은 아니다. 단지 기수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수를 나누는 중심점에 동기(同期)가 있다. 동기는 같은 시기 또는 같은 기간이란 뜻이다. 학교, 군대, 회사 등에서 같은 기수로 같이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거나 입사를 같이 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동기 기수를 중심으로 선·후배 기수가 나누어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기수 사회다. 사람들은 여러 조직에 몸담고 그 때마다 동기들과 어울렸다. 나도 내가 많은 동기에 연결되어 있음에 새삼 놀랐다. 동기는 그 조직을 떠나고도 동기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갖는다. 관계없는 관계는 없다.

학교 동기는 각별하다. 초·중·고·대학교 동기·동창회가 있다. 교육과정마다 연대관계가 다르다. 누가 뭐래도 가장 끈끈한 곳은 초등학교 동기다. 가장 활발한 곳은 고등학교 동기다. 동기회가 모여 동창회를 이룬다. 재학시절에는 무덤덤했으나, 졸업을 하고 나서 더 인연이 강조된다. 동기·동창은 지연과 학연을 이룬다. 인맥이다. 황금인맥이라고 믿는 풍조다. 동기회를 구성하면, 소수이지만 회원자격이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입학 기준인가, 졸업 기준인가? 입학은 같이 했으나 졸업을 같이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논쟁이 붙는다. 전학을 갔다든가, 전학을 왔다든가, 유급을 했다든가, 월반을 했다든가, 자퇴를 했다든가, 사연도 많다. 의무교육에 가까운 초·중·고에서는 졸업기준이 우세하다. 그래서 준회원, 명예회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대학에서는 학번기준이 우세하다. 입학연도 기준이다. 군대 갔다 온 사람, 휴학한 사람, 졸업 행태가 천차만별이다. 대학에서는 초·중·고의 기수가 뒤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기존 선·후배가 바뀐다. 과, 학회, 동아리에서 MT를 가며,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구호로 동기끼리의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대학 동기는 느슨하지만 과별, 동아리별 특성에 따라 야무진 곳도 있다. 요즘은, 키즈 카페에 “어린이집 동창회” 팻말도 보인다.

동기는 동기생(同期生)의 준말이다. 동창(同窓)은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다. 완전히 다른데 두 개를 합쳐서 하나로 쓰고 통용되고 있다. 동문(同門)은 한 스승에게서 함께 배운 사람이다. 동문수학, 문하생으로 쓴다. 요즘은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을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기회인가, 동기동창회인가? 총동창회인가, 총동문회인가?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공채를 하는 곳에서도 동기는 만만치 않다. 치열하게 경쟁을 통해 시험에 합격한 동기들끼리의 유대감은 강하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애환을 토로한다. 동기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른 기수에 밀리지 않으려고 결속한다. 잘 나가는 동기, 끗발 있는 동기를 가진 기수는 역동적이다. 그러나 상위 직으로 올라갈수록 경쟁관계가 된다. 승진제도가 엄격한 조직일수록 동기는 경쟁자이다. 진급에서 탈락한 동기들은 어려운 조직생활을 견뎌야 한다. 나의 존재는 동기들의 직급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연예계에서도 탤런트 공채 몇 기 등등을 내세운다. 아이러니하지만 예능에서도 선·후배의 개념은 공고하다. 공채의 다른 쪽은 특채다. 특채는 유대감이 적다. 신문사나 언론사에서도 기수는 넘볼 수 없는 서열이다.

기수 문화의 절정은 대한민국 군대다. 입대 동기는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대에서도 큰 힘이 된다. 고참 서열의 기준은 짬밥 순이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기수 열외”는 가혹행위다. 비열한 관행이다. 후임자가 선임자를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악습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자를 만든다. 말년에는 “열외 기수”로 우대 받는다. 전입 동기는 같이 더블 백을 메고 자대에 배치된 사람들이다. 전역 동기는 함께 전역하는 사람들이다. 회사로 보면 퇴직 동기다.

감방 동기라는 은어도 있다. 함께 교도소 방을 쓴 사람들이다. 끼리끼리 유대감을 갖는다. 출소하고 나서 의기투합하기도 한다. 지금도 감방 동기들은 계속 늘어난다.

동기는 참으로 정겹다. 성구별도 없다. 나이도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동기는 생각이나 행동이 같지 않다. 삶의 방식이나 처한 환경이 다양하다. 동기회는 순수한 친목단체다. 동기회가 싫어 동기회에는 가입하지 않는 동기들도 있다. “막차 탄 동기동창”이라는 코믹 연극도 있었다. 동기는 때때로 친구와 같은 어감으로 쓰인다. 그러나 친구와는 사뭇 다르다.

한자 표기가 다른 동기(同氣)가 있다. 형제,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중국 성리학에서는 부(父)의 기(氣)가 아들을 통해서만 계승된다는 관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들과 딸 모두를 대등하게 지칭하는 개념으로 양성평등화가 되었다. 동기간(同氣間)에 불화가 생기면 그 가문은 파탄한다.

우리나라는 기수 사회다. 기수로 선·후배를 가른다. 조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 중에 동기가 있다. 윗 기수는 찍어 누르고, 아랫 기수는 치받는다. 윗 기수를 받쳐주고, 아랫 기수를 끌어주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모든 기수는 끼어 있는 셈이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

느닷없이 일본 해군 군가 “동기(同期)의 사쿠라”가 떠오른다. “너와 나는 두 송이 사쿠라 어차피 꽃이라면 져야 하는 것 멋지게 지리라~ 황국을 위해~ 꽃 피는 야스쿠니 신사~” 섬뜩한 역사다. 역사를 고민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 땅의 동기들아, 윗 기수 아랫 기수, 크게 보아라. 사쿠라가 칼을 들이대고 있다. 2019년 우리는 대한민국 몇 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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