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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어둠속의 빛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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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29 17:5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어둠에 눈이 길들면 깜깜한 밤에도 길이 보인다. 호젓한 시골 밤길을 걸어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이다.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둠의 고요 속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느껴본 자만이 알 것이다. 누구나 밝은 태양 속에 살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밝음만 있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오클랜드 남서쪽에 위치한 와이토모동굴로 이동했다. 선선한 날씨였는데 햇살이 비출 때는 덥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며 반딧불이를 보려는 설렘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떤 남자가 안내자에 의해 끌려나왔다. 새치기를 했나보다. 씩씩대는 관계자는 한국 사람인 걸 아는데 중국 사람이라고 했다며 더 화를 낸다. 어딜 가나 꼭 그런 사람은 있게 마련인가보다. 준법정신을 제일로 치는 이곳사람들에게 안 통한다는 걸 몰랐나보다. 가이드는 낯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덩달아 우리도 부끄러웠다.

동굴 지대로 유명한 와이토모 동굴의 이름은 마오리어로 와이(Wai:물), 토모(Tomo:굴)에서 왔단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석회 종유 동굴로 연한 석회암층을 뚫고 흐르는 지하 하천이 수천 년에 걸쳐 깎아놓은 동굴. 천정으로부터 내려오는 종유석들, 수세기 동안 동굴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바닥에서 형성되어 뾰족한 머리를 들고 층층이 올라오는 석순들을 볼 수 있다.

동굴이야 우리나라에도 많아서 석순이나 종유석들은 많이 보았기에 신기한 생각이 들진 않았다. 글로우 웜이 있으니 그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글로우 웜(Glowworm)이란 곤충은 거미와 비슷하다고 했다. 와이토모 동굴은 글로우 웜 서식지로 유명하단다. 글로우 웜은 반딧불이 아니라 반딧불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발광애벌레를 의미한단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뉴질랜드 글로우 웜은 푸른빛을 띤다.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발광을 하는데 어두운 동굴에 신비롭게 보이기 때문에 세계 8대 불가사의에 속한단다.

평균 9개월 정도 애벌레로 살다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데 성충이 되면 날개가 나오면서 입이 없어져서 먹지 못하고 알만 낳고는 며칠 뒤에 죽는다고 한다. 성충도 빛을 내기는 하지만 애벌레들이 훨씬 선명하고 밝은 빛을 낸단다. 애벌레들은 기다란 실을 늘어뜨려 거미가 먹이를 얻듯이 파리 등을 잡아 스파게티를 먹듯 후루룩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들의 일생은 안타깝지만 그들이 내는 빛은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9개월을 애벌레로 있다가 겨우 날개가 생겨 비상하고 싶었을 텐데 입이 막혀 먹질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몹시 안타까웠다.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다가 비상의 기회가 왔는데 세상과 하직해야하다니. 짧지만 그들의 생이 작은 희망의 등불로 누군가를 즐겁게 하고 그렇게 후대를 이어간다는 것으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가이드가 엎드려 천정을 보라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발광체들이 붙어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애벌레들이 가득 붙어있는 석회동굴. 푸른빛을 띠며 반짝이는 게 꼭 밤하늘의 별 같다. 손에 닿을 듯 반짝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동굴안의 지하 강물을 따라 보트를 타며 반딧불이를 감상하게 했다. 조금 높은 곳에 줄을 이어놓고 작은 배에 사람들을 태워 줄을 잡고 건너간다. 동력을 이용하면 놀라서 빛을 잃거나 떠난다고 했다. 애벌레들이 놀라지 않게 소리도 죽여 가며 이야기 하고 글로우 웜이 많은 곳에서 침묵해야 했다. 물소리조차 나지 않게 배를 몰면서 자연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사진은 물로 숨소리도 작게 해야 했다. 누군가의 실수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두 번 다시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기에.

어릴 때 지천으로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를 지금은 볼 수 없다. 자연 환경이 파괴되어 벌레들도 살 수가 없었을 거다. 어느 한 곳에 반딧불이 공원을 만들어 축제를 한다고 하니 좀 서글프기도 하다. 여름밤이면 반딧불이 잡아서 병에 넣어두고 반짝이는 모습을 보던 옛 기억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빛을 발하듯 어둠속에서 빛나는 글로우 웜은 우리에게 어둠속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세상은 밝음만으로 또는 어둠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과 밝음이 함께여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색깔을 내서 어울려져서 아름다워지듯 말이다. 누구나 소중한 생명. 함께 아름다움을 만들면서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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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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