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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어리연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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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7.30 16: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풀 향기가 상그러운 아침입니다.

삶터로 가기위하여 밖으로 나오는데 수생식물을 심어놓은 함지가 바싹 말라 있습니다.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가시연은 자잘한 풀들에 덮여있고 어리연과 노랑어리연이 심긴 곳은 자작하게 물기가 있네요. 지난해에는 예쁜 모습의 꽃을 매일 보여주었는데 바쁜 것을 핑계로 소홀히 대하니 한두 송이 꽃이 보일 뿐입니다.

어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지난해에도 꽃봉오리가 열리는 모습을 담아보려고 두 시간을 넘게 카메라의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적도 있었지요. 결과로 꽃이 피는 과정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새끼손톱만한 꽃은 아마 연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풀 중 가장 작은 꽃일 겁니다.

노랑 어리연은 두 송이가 나란히 붙어 핍니다.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고 나란히 붙어 있는 봉오리의 모습이나 노랑나비의 날개 같은 꽃잎의 끝에 복슬복슬한 털로 치장하고 두 송이가 서로 겹쳐 핀 모습이 연인들이 살포시 어깨를 감싼 모습 같습니다.

비록 하루밖에 피어있지 못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꽃이지요. 이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루지 말아야 할 사랑을 위해 삶을 불살랐던 양녕대군과 어리를 연상하게 되네요. 그래서 어리연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요.

월탄 박종화 선생의 역사소설에는 ‘머리 쪽은 흑 공단같이 검고도 윤이 자르르 흘렀다. 이마 전은 넓지도 아니하고 좁지도 아니해서 알맞고도 반듯했다. 살결은 만져보지 아니하고 바라만 보아도 부드럽고 따스해서 희고도 고왔다. 눈썹은 약간 숱이 많아서 그리지 아니해도 아름답고, 갸름한 속눈썹은 맑은 추파와 함께 사람의 정을 소리 없이 흔들어 놓는다. 코는 백납으로 빚어 놓은 듯 오뚝하면서 윤이 흐르고 연한 뺨에는 오목 볼이 져서 더한층 풍정을 자아낸다. 여기다가 붉은 입술과 하얀 이는 그대로 단순호치다. 어깨는 날씬하고 허리는 가늘다. 마치 백학이 날아들고 세류가 한들거리는 모습이다.’ 라고 어리를 극찬했답니다. 세자를 왕좌의 문턱에서 끌어내린 팜므파탈[femme fatal]의 여인이지만, 같은 여인네가 보아도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 일 텐데, 남정네라면 이런 여인을 마다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비록 권력 앞에 풀잎처럼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양녕대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받들고 삶 전부를 바친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어리하게 보일 듯 말 듯 연못에서나 피어야 할 어리연을 함지 속에 가둬놓고 아침부터 잡스런 상념에 젖었네요. 시도 때도 없는 양녕의 바람기의 삶을 불살라가며 잠재우려 했던 어리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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