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척 하지 마라
[목요세평] 척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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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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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백제문화원장

우리 말 '척'은 어감이 다양하다. 어떤 행동에 붙여 써도 말이 된다. 척은 그럴 듯하게 거짓으로 꾸민 태도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그런 흉내를 낸다. 부정적인 어감인데도, 우리는 척에 길들여져 있다. 척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척 하며, 척에 속고, 척에 웃으며 살아온 게 나의 인생 아닌가라는 느낌마저 든다.

얌전한 척, 온순한 척, 공부 하는 척 한다. 일 하는 척, 눈 감은 척, 잠자는 척, 죽은 척 한다. 안 한 척, 안 먹은 척, 자기는 아닌 척 한다. 친한 척, 같은 편인 척, 좋은 척 한다. 모른 척 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래서 애써 못 들은 척, 못 본 척, 실수한 척 한다. 관심 있는 척, 세심한 척 한다. 우스운 척 한다. 정의로운 척, 개념 있는 척, 미친 척 하고 들이댄다.

있는 척, 배운 척, 아는 척 하면 3척 동자 꼴불견 취급을 받는다. 타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잘난 척에는 거만, 교만, 자만이 깔려 있다. 잘난 척은 역효과를 초래한다. 젠체하면 꼴값 떤다고 싫어한다. 함께 하고 싶어 끼어들다가 자기 자랑을 넘어 자기 과시로 비추어지면, 잘난 척 한 게 아니더라도 본의와는 다르게 잘난 척이 되어 버린다. 얕은 지식으로 모든 일에 참견하면서 척척 박사인 척 하면,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반대로 실제로도 진짜 잘난 사람에게 열등한 사람이 “잘난 척 좀 그만 하라”고 눈총을 주는 경우도 있다. 적당한 잘난 척은 한 번쯤 해도 괜찮다. 너무 겸손해도 거북하다. 정말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있거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나서는 것도 괜찮다. “제 자랑 좀 할게요” “잘난 척 좀 하겠습니다” “저는 제 잘난 멋에 사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대는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사람이 언젠가는 잘난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잘난 척에 그치지 말고, 진짜 잘난 사람이 되라.

자신은 잘난 척 하면서 다른 사람은 잘난 척 하면 안 된다는 모순을 가진 존재가 많다. 잘난 척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서다. 무림에는 고수들이 많다. 세상에는 진짜 잘난 사람이 많다. 내가 잘나고 못 나고는 내가 아닌 남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척 보면 안다. 그냥 있어도 귀티 나고, 가방 끈 티 난다.

재산 자랑을 하는 사람에게 돈 많으니까 “네가 밥 사라” 하면 돌아선다. 가진 것 쥐뿔도 없는데 있는 척 한다. “그런 것쯤 껌 값이야” “요즘 웬만한 거 다 그 정도하지 않나?”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들은 실소를 한다. 반대로 궁상떠는 사람도 있다. 웬만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척 하는 사람은 쪼잔하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닌다고 자랑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을 상한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니는 것은 맞지만 상대방이 기분 나쁠 정도로 해대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기득권층은 신분세습에 집착한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졸부(猝富)가 따로 없다. 혜택과 특혜 사이에 간극이 없다. 투자인지, 투기인지 경계가 없다.

말끝마다 사표 내겠다고 열 받는 사원이 있다. 치받았더니 상사가 찍 소리도 못하더라고 큰소리친다. 무용담 꺼내며 제가 다 이겼다고 센 척한다. 센 척 하는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강한 척 한다. 강한 척 하는 것은 약한 거다. 약점을 인정해도 괜찮아야 진짜 강한 거다.

바쁜 척 한다. 전화를 걸면 “회의중입니다” 메시지가 뜬다. 회식을 하다가도 자주 일어나 휴대폰을 받으러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친구들 모임 날짜를 잡으려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면 “그 때 가봐야 알 거 같아” “가고 싶긴 한데 스케줄이 될까 모르겠다” 즉답을 안 한다. 바쁜 척 하는 사람은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에 발을 동동 구른다. 늘 시간에 쫓긴다.

척은 유교 문화와도 관련 있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척, 관대한 척, 성인군자인 척, 너그러운 척, 예의범절로 교육을 받아왔다.

“나이 먹으면 괜찮아져요?” 괜찮은 척 하는 거다. 20대에 설레던 30대, 30대에 꿈꾸었던 40대, 40대에 기대했던 50대, 50대에 바라보던 60대·…. 뭔가 이룰 것 같았는데 그렇게 지나갔다. 좋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자식도 있고, 벗도 있고, 멋지게 노년을 맞을 줄 알았는데, 언제 괜찮아질 건가?

아내와 대화하다가 가끔 엇갈린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는데 당신이 뭐가 괜찮아요?” “다 알아” “내가 모르겠다는데 당신이 뭘 다 알아요?” 괜찮은 척, 다 아는 척 하다가 돌아눕는다. “당신 힘들었겠다”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이를 먹어서도 척은 강고해진다.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제대로 반듯하게 잘 살기가 쉽지 않다. 어른인 척, 어른 놀이를 한다. 어른 놀이를 하는 척박한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척,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저 다 괜찮은 척을 강요받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수롭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어른이 되긴 했지만 세상살이는 부드럽지 않다. 여전히 하루는 20대와 똑같이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다. 사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거부해 본 적 있는가. “아니오!” 라고 당당히 말해 본 적 있는가? 식민지 지배, 민족상잔의 전쟁, 군사독재를 지나 오늘이 왔다. 각자의 인생관이 있는 거고, 각자의 도덕률이 있는 거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요즘 우리나라 척은 장난이 아니다. 애국(愛國)인 척, 대한민국은 광기로 들썩인다. “역사는 바꿔 쓸 수 없다” 누가 해야 할 말인가! 네 편 내 편, 큰 악과 작은 악이 서로 악이 아닌 척 핏대를 올린다. 망측하다.

척을 달고 다니지 마라. 척을 내려놓아라. 티 내지 마라. 있는 티, 배운 티, 도도한 척 마라. 영혼을 팔지 마라. 들키지 않는 척은 없다.

“나는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참 좋더라” 사자는 센 척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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