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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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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9.17 18: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추석전후로 볼 만한 영화를 둘러보니 온통 리부트와 리메이크 투성이다. 문득 올 초 미국의 한 극장가에 걸린 리메이크 천지의 상영작 리스트를 본 네티즌이 댓글이 떠오른다. ‘혹시 지금 1990년대인거야?’

리부트(Reboot)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시리즈 영화가 2편, 3편,. 그렇게 숫자가 커져만 가다 어느 순간 익숙하던 주인공 배우와 콘셉트가 확 바뀌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프랜차이즈 영화와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리부트에 익숙하다 보니 아예 세대별 주인공을 지칭하며 5대 제임스본드나 6대 슈퍼맨이나 배트맨 등의 호칭에 익숙한 캐릭터도 있는가 하면 30여년만에 속편이 나오거나 시리즈 전체가 다시 기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본다. 또 인기 시리즈의 속편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아예 그 시리즈의 기원을 다루거나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prequel)제작부터, 주인공 외 주변인물이나 스토리를 다루는 번외편 스핀오프 (spin-off)까지 원작을 재가공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이렇게 탄생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는 새롭다는 의미의 뉴(New)와 복고의 레트로(Retro)가 합성된 단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창작물을 시장에 진입시킬 때의 가장 큰 어려움 두 가지는 완성도와 인지도다. 높은 완성도가 요구됨은 물론이고, 뛰어난 완성도로도 소비자와 시장이 알아주지 못해 사장되는 작품이 얼마나 많겠는가. 작품 제작비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비가 같은 규모로 투자되는 곳이 영화현장이다. 이토록 어려운 제작과 홍보의 이중고를 한방에 해결하는 그나마 괜찮은 방법은, 이미 검증된 완성도와 인지도를 가진 기존 흥행작을 만지작거리는 것이고, 속편이나 전편을 만들어 사골처럼 우려내다 시간이 흘러 리부트까지 염두에 둔다면 투자위험도 하락과 안정적인 수익확보까지 일종의 보험이 생기니 당연히 구미가 당길 수밖에.

대중음악은 이미 예전부터 뉴트로를 선구적으로 선도하던 장르다.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 주어진 원곡의 기본테마를 이용해 새롭게 편곡하는 방법으로 아예 장르를 바꿔가며 새롭게 재창조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인기 있던 탑가수들끼리 경연해서 탈락시켜가며 우승을 가리던 프로그램에서는, 워낙이 출중한 기량의 경연자들끼리 나온데다 각자의 개성마저 독특하다보니, 여러번의 라운드를 거치며 결국은 원곡의 편곡 싸움이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같은 곡이라도 어떻게 편곡하는지가 전체적인 색깔과 개성을 결정짓고 나아가 승패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순수음악에서도 뉴트로의 역사는 유구하다. 역사상 최다 오페라대본으로 쓰인 그리스 로마 신화 오르페우스의 소재는 무려 60번의 리메이크를 자랑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 오페라 걸작으로 남아있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는 24살의 나이로 당대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롯시니의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이미 파이지엘로라는 거장의 작품으로 작곡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상연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떠오르던 샛별 롯시니라도 거장의 작품을 리메이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작곡을 강행했고 성공한 리메이크의 결과는 엄청나서 현재는 파이지엘로의 전작은 음악학자들 아니면 들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잊혀져버렸다. 재미있는건 롯시니 스스로도 이 오페라 서곡은 이미 완성도를 인정받은 자신의 다른 작품의 서곡을 가져다 썼다는 사실이다. 셀프 리부트 한 셈이다.

오페라와 음악계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집은 바그너는 개념의 리부트를 사용했다, 음악을 다시 고대 그리스의 극과 음악이 통합된 시절로 되돌려 놓자는 개념 하나로 음악의 기법과 구성 모두 변혁을 이끌어 내서, 오페라는 바그너 이전과 이후로 획이 나뉜다.

순수음악의 기술적인 발견은 이미 20세기 초까지 거의 찾아냈다고 봐도 무방하고, 우연적 소음까지도 음악으로 간주할 만큼 각종 음향의 실험적 시도도 거의 끝난 상태이다 보니, 음악만큼은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시피 할 정도여서, 요즘은 미니멀리즘으로 불리는, 반복되는 리듬과 최소한의 테마만 이용하며 작곡가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음악형식이 최신 영화음악의 트렌드가 되었다.

‘해 아래는 새것은 없나니’ 라던 구약성서의 전도서 구절, 그리고 하늘 아래 새로움은 없어 창조는 그저 새로운 반복일 뿐이라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과 극단적 회의론이 웬일로 같은 소리를 낸다. 묘하게 어울린다. 결국 기존의 재료를 어떻게 남다르게 풀어내는가. 그것이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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