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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사람 향기를 맡는 작가이고 싶다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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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9.23 15: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열심히 풀을 뽑는데 낯선 남자가 다가온다. 일손을 멈추고 누구냐고 물으니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 하다가 내가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왔단다. 그게 왜 궁금하냐고 물으니 컨테이너에 그림과 글을 그려놓고 차고에 시를 적어 놓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는 것이다.

내 집에 손님이 왔는데 일하기가 멋쩍어서 차를 끓여와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소 토박이로 가끔 이곳을 지나치는데 시골에 이렇게 그림과 글을 적어 놓은 집이 없다보니 신기했단다.

컨테이너를 창고로 쓰기 위해 들여놨더니 철 고물처럼 황량했다. 별 내리는 오두막이란 당호도 나무에 조각을 해서 놓고 컨테이너에 별도 그리고 오두막도 그렸다. 시를 읽고 기분이 나빠질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읽고 지나가라고 시도 써놓았다. 가끔 서서 글을 읽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한번은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누구냐고 했더니 시를 좋아하는데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단다. 차 대접을 하고 글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도 시를 쓰고 싶다면서 실례인 줄 알면서 벨을 눌렀다는 것이다.

집에 있던 동료 문인들의 시집이 많이 있어서 그 분에게 주었더니 고맙다고 했다. 며칠 후에 다시 와서는 나를 위한 시를 지었다면 주고 가는 것이다. 너무 감사하고 면목이 없어서 이런 글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했더니 이렇게 만나서 너무 좋았다며 가끔 들른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나도 오래전에 유명한 소설가가 사는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분의 책을 읽다보니 그분의 어떤 면이 소설을 쓰게 했는지 궁금했다. 마침 그곳을 여행하다가 그 집의 벨을 눌렀다. 사람의 그림자는커녕 인터폰으로 부인이라고 밝힌 그 분은 작가가 없다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었다.

뒤돌아 오는 길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작가를 만나려던 마음도, 그분을 존경했던 마음도 다 날아가 버린 것 같고 어리석게 책 좀 읽었다고 작가를 만나려고 한 내 행동도 실망스러웠다. 그 이후 나는 어떤 작가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냥 책으로만 작가를 접하기로 했다.

우리 집엔 대문이 없다. 누군가 나를 찾아오면 늘 열려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차를 대접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속에서 글의 소재를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

외출을 준비하다가도 지나는 길에 궁금해서 왔다고 하면 문을 열고 차를 대접한다. 그 때의 기억이 내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일 게다.

글을 보면서 작가가 너무도 멋지고 사리에 밝은 분이라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글 쓰는 분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실생활에서 그 분들과 접하게 되면서 실망으로 바뀌는 때가 많아진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자주 보게 되어서일 게다. 내가 너무 순진했는지도 모르겠다. 글과 작가가 같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분들을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을 보고 존경했던 마음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 유명한 작가들의 민낯이 공개되는 계기가 있었다. 미 투 운동으로 밝혀진 그의 얼굴을 보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분의 책을 읽으며 나침반 같은 글이라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읽고 또 읽으며 책의 메시지처럼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아무리 허구적인 글이라고 해도 가르침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는데.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글에서도 화나는 글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수필을 가르치신 스승께서 글에 너무 화를 너무 많이 담지 말고 완화된 표현을 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화나는 글을 적고 싶을 때가 있다.

스승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혹시 모를 독자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에 화나는 글에 부드러움을 첨가한다. 그것이 혹시 나의 내면과 외면이 달리 보이진 않을까. 솔직한 글이고 싶다고 마음 그대로 글을 쓰는 것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중성으로 비춰질까 걱정이 된다.

야생화 밭에 풀이 꽃보다 더 크게 자라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했는데 꽃들에게 미안해서 간만에 호미를 들었다. 잡초로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는 꽃들에게 따뜻한 햇볕을 주었다. 방긋방긋 웃는 것 같다.

자동차 문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내 집을 방문한 모양이다. 목을 쭉 빼고 현관 쪽을 쳐다본다. 차를 끓여야 할 것 같다. 사람 향기를 맡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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