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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가장자리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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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09.30 15:04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거울 속에 서로 다른 이방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동작이 어설프기도 하고 처음이라 그런지 얼굴이 마주치면 멋쩍은 웃음만 나온다. 주민센터 프로그램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실에서 발표회를 한달 여 앞두고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치어리더를 무대에 올려 보기로 결정했다. 연습시간은 다섯 번 정도로 일요일 오전반 수업이 끝난 후 한 시간 남짓이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일요일 아침이면 250여명 가량의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센터로 온다.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KIIP’는 이민자가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빨리 익히도록 함에 따라 국민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지역사회에 쉽게 융화 될 수 있도록 법무부에서 지원하는 제도이다. 재한외국인에 대한 각종 지원정책을 ‘KIIP’로 표준화하고 이를 이수한 이민자에게는 국적취득 필기시험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여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기회를 부여한다. 사전평가를 거쳐 단계에 배정되는데 0단계부터 4단계까지 한국어 교육시간은 415시간이다. 최종 5~6단계는 한국사회이해과정으로 70시간의 교육이 있다. 각 단계마다 80% 출석하고 평가시험에도 합격해야한다. 전날 야근을 하고도 수업시간을 지키려고 애쓴다. 다른 수업보다 ‘KIIP’는 비자를 변경할 때도 가산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의 연고주의에 대해 가르칠 때 문득 그들은 한국에서 누구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을 테고,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면 그곳엔 나와 같은 한국어 선생님들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70년대 우리의 아버지들이 해외에서 고생하며 일을 한 것처럼, 그들도 나이는 어리지만 누군가의 아버지로 가족과 떨어져 타국살이를 견디고 있었다. 타지에서 한창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일 때면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도 힘들 텐데 어려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요즘 신조어로 ‘인싸’와 ‘아싸’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아싸’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로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를 준비하면서 망설임 끝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장자리에서 맴돌다가 주관기라서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오랫동안 단절됐던 학연(學緣)을 이었다. 희미한 기억속의 친구들과 만나면서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서 있는 나를 보았다. 한 번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잇기도 어려운데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외국인들은 어떨까?

춤 연습이 세 번 정도 되었을 때 비로소 자리 배치가 정확해 졌다. 발표일이 평일이어서 퇴근 후 참여해야 했고, 중간에 못 한다고 빠져나가서 부득이하게 나도 무대에 서게 되었다. 땀 흘리며 연습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생겼다. 나는 오후에도 수업중이라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없어서
자꾸 틀렸다. 선생님의 서툰 모습이 그들에게는 더 정감있었는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치마와 빨간색 반짝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때의 우려와 달리 정말 멋지게 해냈다. 내가 그들에게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설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가장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이끌어 줄 사람만 있다면 ‘인싸’와 ‘아싸’의 경계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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