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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스님의 마음이야기] 항아리

보안스님 호주 시드니 보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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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03 15:2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보안스님 호주 시드니 보리사 주지
보안스님 호주 시드니 보리사 주지
어제는 잠들기 전에 한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우리의 전통 항아리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어느 집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어딜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물건이었으나, 점점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물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항아리’ 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서구화 되면서 사는 공간도 아파트를 좋아하며 음식을 저장하는 냉장고가 친근하게 주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특히 김치 냉장고의 발달로 항아리라는 말 조차 사라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리에서 고개를 약간 들어서 한쪽 곁을 보니 항아리 세 개가 나란히 다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옛 생각에 쓰는 내용이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항아리에 대한 추억은 어려서 장독대를 가지고 있던 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의 추억을 더듬어 보자면, 항아리 속에는 쌀이 있었고 된장, 간장은 물론이려니와 음식의 재료나 완성된 음식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 자리가 마련된 장독대의 항아리는 겨울이 되면 하얀 모자를 쓰고 여름엔 더위를 타는지 뚜껑을 벗고 속안에 햇볕을 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간장 된장의 맛이 한결 나아 지지요.

숨바꼭질을 할 때는 키 크고 펑퍼짐한 것들은 조그마한 어린 몸을 숨겨 주기엔 넉넉한 방패 같았습니다. 가을에 따서 넣어둔 떨떠름한 감들은 서서히 익어 갔고, 기다리지 못하고 익었나 안 익었나를 확인하려는 고사리 손에 익기도 전에 상처를 입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자연스레 얼굴에 퍼지는데, 요즘은 살아 숨쉬는 항아리는 점차 사라져 가고, 음식물의 상태를 잘 유지 시켜주는 냉장고라는 물건이 달라진 식생활에서 오는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추억이라는 이름에서는 똑같은 느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겠지만, 항아리 속에서 느꼈던 그 느낌과 냉장고에서의 느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이 한 구석도 없었지만 요즘 발달된 기계에서는 그 만큼의 사회변화에 맞춰 그 사랑이 돈으로 대신되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기에 어린이들이 필요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 지 걱정일 뿐입니다.

맛있는 반찬을 먹어 본 사람이 그 맛을 만드는 것처럼,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의 맛을 알기에 나눠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 보지 못하면 그 방법이 서툴거나 그 정도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랑이 충분이 필요한 나이에는 그만큼의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 필요 합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사랑이란 그 시기를 놓치면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도 자식들 만큼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키워 보려고 애쓰지만, 사랑의 맛을 잘 모르고, 사랑을 품는 방법이 서툴러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합니다. 마음만 앞서기 때문이지요.

항아리 속에서 느꼈던 가족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생각해주고 서로 아껴 줍시다.
조건 없이…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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