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처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면 그것은 인도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인도주의는 ‘사람의 평등한 인격과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인간애를 바탕으로 인종, 민족, 국적, 종교 등의 차이를 초월해 인류전체의 복지를 이상으로 하는 주의’이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에서 모든 가치를 찾으려 하는 사고방식이다. 인간다운 인간, 바른 인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성교육과 인도주의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다. 폭 넓게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양자의 핵심이다.
그런데 인성교육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보게 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인도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인성교육에 대해 살펴보면 내가 알고 있는 인성교육과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성교육이 ‘순응하고 순종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직적 인간관계 속에서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아래 이거나, 약자인 경우 상대에게 조건 없이 복종하고 순응하는 인간이야말로 인성 좋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은 오히려 약자나 소수자를 더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정의와 불의가 맞설 때 정의를 선택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하지만 잘못된 인성교육의 기준을 갖고 있는 자들은 불문곡직 강자의 논리와 지시에 따르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인성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도주의를 부정한다. 난민의 국내 정착을 반대하고, 아사국에 대한 식량지원을 반대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을 차별대우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하자는 인도주의를 반대하면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평등의식에 기반을 두지 않고 선별적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 사람, 극심한 차별 속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면서 인성교육을 외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니 그들이 주장하는 인성교육이 결국 순응과 복종을 강조하는 교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으로 가르치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그러니 인성교육은 인도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게 맞다. 약자를 외면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인간으로 가르치는 교육은 참된 인성교육이 아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 입각해서 불의에 맞서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인성교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흉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도, 내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도, 사람인 이상 그들이 기아나 질병, 전쟁 등으로 고통 받을 때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을 해줄 줄 아는 인간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인성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음식을 마구 버려 쓰레기를 만들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드는 이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일에 이유를 대고 조건을 댄다면 이미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인성의 기본이다. 인성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