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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위로

한기연 시인·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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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28 14: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나를 향해 달려 들 것 같은 하늘을 보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차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앞만 보고 운전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파란 하늘과 노래 한 소절이 눈물샘을 자극했나보다.

오래된 사진 속에 열일곱 살적 네 명의 소녀가 의자위에 걸터 앉아 웃고 있다. 친구가 사진첩에서 찾았다며 폰으로 보내 온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학교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말괄량이처럼 몰려다니고 티격태격하며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한부모가정이었다. 환경이 비슷해서였을까?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사진을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나왔고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가 만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30년이 넘은 친구들과 몇 년 전에는 1박 2일로 여행을 가서 지난 추억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유안진님의 ‘자화상’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 ‘한 오십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로 시작한다. 작년에 오십이 되었을 때 맴돌던 시의 한 구절은 자꾸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삶을 반추해 보고 지난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도 나이가 들어감을 느꼈다. 시간을 되돌아보니 주변을 살피지 않고 살아 온 것이 가장 후회스러웠다.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앞만 보고 살았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일이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함께 하지 못하고 인색했다.

지난여름, 심경이 복잡하고 우울했다. 지인이 빌려 준 책 몇 권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그 중 힘들 때 읽으면 도움이 된다며 권한 책이 ‘연탄길’로 유명한 작가 이철환이 쓴 ‘위로’라는 책이었다. 작가는 5년 동안 우울증을 앓았는데 그 시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가 그린 그림과 짤막한 내용의 글로 이루어져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읽었다. 짧지만 한 장 한 장 그림과 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고뇌가 전달되면서 어지럽던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이 책은 반쪽 붉은 나비가 되기 위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음속에 핀 꽃을 따 먹은 파란나비 피터의 여정을 그린 것이다. 피터는 여행길에 만나는 모든 관계가 끝날 때마다 홀로 남겨져 아프고 외로울 때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위로 받고 다시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미래의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상처를 다독이는 것이 위로라면 행복은 위로가 키워내는 열매라고 말한다. 그는 행복이란 ‘기다릴 줄 아는 용기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하며 긴 어둠의 시간을 견뎌낼 것을 강조한다.

다행히 나는 그 책에서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곁에 두고 몇 번을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슬픔으로 마음이 아프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그냥 곁에 있는 것이 전부였다. 사진 속 친구 중 한 명은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금방 털고 일어날 것 같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어떻게 마음을 전하고 위로해야할지 몰라서 애면글면 휴대폰만 만지작거린다. 친구를 마주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

갑자기 맑고 청명한 가을 날씨에 아픈 친구가 생각나며 눈물이 났다. 건강하지 못한 친구의 얼굴을 보러 가봐야겠다. 상처를 잘 견디고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 주고 싶다. 서툴지만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안아주고 싶다. ‘힘내, 넌 할 수 있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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