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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가을 분갈이

변정순 음성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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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29 14: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시월은 참 좋다.

나에게 추억과 그리움, 여행, 고독, 만남, 사색이란 선물을 주며 살아온 날들을 회상케 하고 새로운 곳을 찾도록 용기를 준다.

가끔은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장 아래로 펼쳐진 단풍든 담쟁이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마음으로 가을여행 하는 시월 어느 날, 아직도 몸살 하는 무늬 벤자민 에게 눈길이 멈췄다.

늦봄 우리 집에 올 때는 반짝반짝 윤도 나고 매끄러우니 싱싱했던 나무였다. 그러던 것이 거실에서 너 댓 달 키우니 이파리는 말라가며 바닥에 죄다 떨어져 수북이 쌓였다.

“아휴 딱 한지고, 왜 이럴까?” 무늬 벤자민에게 말을 걸으니

“참 너무해요 저에게도 적당한 관심을 가져주세요” 벤자민이 아프다며 대답하는 듯 했다.

그동안 물도 잘 주었고 나름대로 관심을 쏟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얼른 밖으로 옮겨놓았다. 집안 온도차 때문에 나무가 병이 난 것만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바람과 햇빛을 쏘이면 좀 살아날까 싶어서 내놓았는데도 영 생기가 돌지 않았다. 곧 찬바람이 불면 따뜻한 곳으로 다시 들여놓아야 하는데 걱정이 되어 가을 분갈이를 해 보기로 했다. 분갈이하기엔 좀 이르지만 그냥 놔두면 나무가 죽을 것 같아서 서둘렀다. 깜짝 놀랐다.

나무를 뽑아보니 뿌리는 썩고 화분에는 잘라진 스치로플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기는 통하지 않고 환경이 나쁘니 나무가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뿌리가 숨을 쉬어야 건강한 나무로 클 텐데 아픈 나무가 안쓰러웠다.

나름대로 분갈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들은풍월은 있어서 뿌리의 숨구멍을 막은 스치로플과 딱딱한 흙을 죄다 털어내고 병들어 길게 뻗은 굵은 뿌리도 잘라냈다. 다소 공격적인 작업이지만 이렇게 해야 건강한 나무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잘라내야 가는 뿌리에서 난 뿌리털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몸살을 하며 이겨낼 것이다.

빈 화분에 망을 깔고 깨끗이 씻은 마사토를 깔아주고 분갈이 흙과 일반 흙을 섞어 잘 다듬은 무늬 벤자민을 심었다.

분갈이 때문에 아직도 몸살이 다 끝나지 않는 모양새지만 적당한 물과 바람, 햇빛을 받아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무늬 벤자민이 대견하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담실에 오는 아이가 있다.

매일 상담실에 오면 “졸려요. 힘들어요” 란 말만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툭하면 누워있고 먹을 것만 찾고 말끝마다 부모님, 친구에게 불만과 욕설을 한다.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밤새 잠이 안온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이토록 사연이 많아 신경증에 시달리고 사는지 어린 학생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매일매일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의 말과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쉽게 바꾸기는 어려운일 이었다. 나 자신도 변화하기 어려운데 십 육년 동안 형성된 아이의 성격을 내가 어떻게 쉽게 바꾸고 변하게 할 수 있겠는가. 작은 화분에서 뿌리가 뻗어 엉켜버려 옴짝달싹도 못하는 나무를 뽑아 잘 정리하여 넉넉하고 큰 화분에 심어 숨통이 트이게 해 주는 나의 분갈이 역할로 그래서 우리아이가 서서히 몸살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와 건강한 사람이 되게 만드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모든 것을 단번에 바꾸려 하기 보다는 한 가지라도 잘한 것을 칭찬하고 용기를 주련다.

아픈 벤자민도 분갈이를 해주었다고 금방 벌떡 일어나지 않았다. 잘 치료받았으니 서서히 건강한 나무가 되어 잘 자랄 것이고 우리 아이도 믿고 관심을 가져주면 분명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나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잘 견디며 커주는 벤자민 처럼 이 녀석도 환경에 잘 적응하며 견디면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 가을분갈이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월의 가장 좋은 공짜 선물중 하나, 다시 가을사색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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