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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가을빛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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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0.30 15: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10월 하순으로 접어 들면서 설악산을 비롯한 북부의 산들이 단풍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단풍은 점차 남하하면서 온 나라를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다. 집 앞 뜰에 있는 나무부터 심산유곡의 나무들까지 채색 옷으로 갈아입는, 그래서 가을은 아름다운 색깔의 계절이다.

우리의 생활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매매일 색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 미술이 든 날이면 여섯 가지 크레용을 준비해서 학교에 갔었다. 어쩌다 옆 친구가 12색 크레용을 가져오면 반 아이들이 몰려들어 그 다양한 크레용 색에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24색 크레파스를 가지고 왔을 때는, 공책 장에 그 친구가 그어준 색깔을 동생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했었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동차의 색깔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각 회사별로 몇 십 종류에서 몇 백 종류의 색을 개발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페인트 점에 가도 다양한 색상을 볼 수 있으며 이미 있는 색을 혼합하여 또 다른 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컴퓨터에서도 색을 찾아보면 몇 백가지가 넘는다. 그러고 보면 현대는 색채의 다양성에 파묻혀 사는 세상 같다.

먼 옛날 흑백의 색에서 채색을 찾아 활용하기 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권력자만이 화려한 채색 옷을 입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 색깔 속에 자신의 무력함을 감춘 것은 아닌지…

4, 50여년 전 칼라 TV가 보급화 되면서 우리들의 눈은 채색에 더욱 민감해졌다. 신이 주신 특권일까?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만이 다양한 색을 감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천연색의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우리 눈은 점점 더 색에 무뎌져 가는 것은 아닌지. 어쩌다 흑백 화면을 보면 보는 것 같지도 않고 보아도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예인들이 무채색의 옷을 입고 등장하면 무엇인가 2% 부족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은 남자 연예인들도 빨강, 노랑 등의 원색 옷을 입고 나온다. 처음에 볼 땐 어색해 보였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오히려 그렇게 입지 않으면 더 어색해 보인다.

현대 건축의 주요 재료인 콘크리트는 그 견고성과 공법의 발달로 도시를 이루는 주 재료가 되어왔다. 본연의 회색으로 “잿빛 도시‘라는 암울함의 대명사를 얻기고 했다. 1980년대 초 까지는 담장에 도료를 칠하면 위 2/3는 회색으로 아래 1/3은 검은색으로 칠하는 게 정형화 됐었다. 왜 그렇게 칠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도료의 발달로 점차 채색의 도료를 사용하게 됐고 벽화를 그려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요즘 전해지는 소식을 보면 각 학교마다 벽화그리기가 성행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색깔과 그림이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전국에 널리 알려진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청주 수암골, 대구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 수원 행궁동과 지동 벽화마을, 통영 동파랑, 여수 고소동, 천안 미나릿 길, 부산 감천동 등은 추억을 담고 싶은 이들이 찾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대단한 예술적 작품이 아니라도 좋다. 삶을 순수한 마음으로 표현한 각 곳의 벽화는 그 자체가 우리이고 내 모습이기에 더욱 친근감이 있다. 대전에도 대동벽화마을이 있어 요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움직이게 한다.

지난 여름 기록을 세운 태풍의 침입과, 불안한 경제와 어수선한 정치 상황으로 얼굴 펴지 못하고 보냈다. 노자는 ‘다섯 가지 색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五色令人目盲)’고 했다.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라는 말이 아닐까? 10월 말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다. 푸른 가을 하늘과 오색찬란한 자연의 선물을 보며 몸도 마음도 상쾌해졌으면 좋겠다. 가까운 벽화 마을로, 채색 옷 갈아입는 뒷동산이라도 올라 가을빛에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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