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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에티켓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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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1.19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대전지역에 꽤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진 국밥집이 있다. 이곳은 음식 말고도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맛집에 흔한 벽면의 유명인들 시식 후기가 담긴 싸인지 대신 수많은 권고(혹은 경고) 문구가 붙어있다. 손님들에게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리는 내용을 사안별로 A4지에 써서 코팅을 해서 벽면에 붙여 놓았다, ‘파출소가 가까우니 음주 후 난동금지’부터 인근 업소에 피해가 가지 않을 주차요령, 음식 추가에 관한 권고 사항 등등이다. 대략 각기 다른 10여 가지의 사안을 일일이 적어 식당 곳곳 손님들의 눈이 닿는 곳에 모조리 붙여놓았다. 업소와 손님이 서로 지켜야할 합의사항을 적어놓은 표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티켓(Etiquette)의 어원이 바로 이 국밥집 표찰이다. 옛 불어인 에스티키에(estiquer)로, '말뚝에 쓰인 표찰'이라는 의미다. 베르사이유 궁정의 드넓은 잔디밭에선 연회가 자주 열렸는데, 잘 가꾸어진 화단에 취한 귀족들이 들어가서 꽃들을 짓밟아 놓는 일이 발생하자 정원 관리인이 ‘화단 출입금지’ 비슷한 표찰을 걸었고, 시간이 흘러 귀족 서열을 국왕과 가까운 순서로 자리를 지정하는 표찰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붙이는 라벨’이라는 뜻인 에티켓(Etiquette)으로 변화했다.

말 그대로 서로 지켜야할 합의사항. 예의범절, 규범 정도가 되겠다.

공연장에 가면 일단 숙지할 에티켓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공연자를 위한 화환과 선물, 음식물 반입이 일체 금지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적 음향 증폭을 쓰지 않는 클래식 공연장은 기본 배경소음이 약 25db로 도서관 정적에 가까운 정숙함이 기본이다. 그 위에 연주자의 자연적 공명과 음색을 실어내는 것인데 객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음은 바로 무대에 영향을 미친다. 과자봉지를 뜯고 포장지를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모두 50db 안팎이며 빨대로 음료를 빠는 소리와 과자를 우적우적 씹는 소음은 60db이다. 당연히 공연에 방해가 된다, 영화를 보는 극장은 기본적으로 베이스 증폭 우퍼스피커에 기본 음량이 약 80db이다. 그리고 격렬한 전투씬에서는 100db을 상회한다. 극장에서 탄산음료를 홀짝거리거나 팝콘을 씹어도 스피커 소리에 묻히지만 공연장에서 그 영향은 엄청나다,

신조어로 ‘관크족’이라는 것이 있다.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치명적인 방해를 하는 관객을 뜻한다.

몇 년 전 내한 공연중이던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 때 객석에서 벨소리가 울리자 지휘자가 연주를 멈추고 돌아서서 해당 관객을 쳐다보았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유난히 까탈스러운 지휘자일까? 천만에. 그렇게도 보고팠던 유명 단체가 내한했으니 오랜 시간을 기다려 비싼 돈 내고 티켓 산 사람들 입장에서 벨소리를 낸 사람이야말로 관크족이 아닐 수 없다. 호흡을 가다듬고 연주를 준비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입장에서도 객석에서 울리는 벨소리는 자괴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프로들이라고 아무 때나 동전 넣으면 연주하는 자판기가 아닌 살과 피로 숨쉬는 사람일진대, 고도의 집중력으로 준비하던 찰나에 울리는 벨소리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의 유명극장들은 벌금제까지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관객의 양심과 실천에 기대는 편이니 연주자 입장에선 속터질 노릇이다.

맘대로 찍어대는 동영상도 문제다. 소장욕심인지 비판목적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스튜디오녹음을 거쳐 잘 조율된 음향이 아닌데다 객석의 배경소음이 들어간 녹음과 영상이 온전할 리가 없고, 그런 녹음을 좋아할 연주자들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보통 그렇게 불법 녹취한 영상도 아무렇게나 SNS에 퍼뜨리니 저작권은커녕 연주자의 최소한의 초상권마저 무시하는 행위다. 보통 클래식 공연장들은 그렇게 몰래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잘 훈련된 현장 안내요원들의 제지를 받는다. 공연중에 요원이 객석까지 찾아와서 주의를 주고 떠나니, 찍다 걸린 사람도, 주의를 주는 요원도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고 그 주위에 있던 관객들도 피해를 입는다. 집중하던 공연 시야에 느닷없이 방해물이 출현하니 말이다.

그 무엇보다도 연주자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하고 그것을 평가받는 자리에서 객석에서의 소음과 움직임은 연주자의 평정심을 잃게 만든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극장에선 객석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질러도 스크린안의 내용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올라가 있는 공연장무대에선 객석의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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