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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벼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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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1.24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올해 쌀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12만 4000톤 정도 줄었다고 한다. 따라서 6만톤 가량의 공급이 부족할 전망이라고 한다. ‘링링’과 ‘타파’ 등의 태풍 영향과 가을장마로 일조시간이 줄어 든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또한 쌀 소비가 줄어 재배면적도 줄어간다고 한다,

우리 생활에서 벼농사는 중요한 가치를 지녀왔다. 매일 매끼 먹는 것이라 그럴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가을 들판의 익어가는 벼를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라는 표현으로 풍년을 이야기 했고,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보면 함께 마음 아파했다.

벼농사를 보면 우리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봄소식이 전해질 무렵 볍씨를 물에 담가 싹틔우기를 하면서 못자리 준비를 한다. 못자리에서 자라는 어린모를 보면 꼿 어머니 뱃속의 아기 같다. 예전에는 한웅큼 씩 손으로 심었지만 요즘은 이앙기로 심는다. 함께 자란 어린모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심겨져 자란다. 어머니 품을 떠나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자식들 같다. 더운 여름 병해충을 이기면서 이삭이 영글어간다. 벼꽃이 필 무렵 빳빳하게 선 이삭이 가을의 따끈한 햇살을 받으면서 점차 익어가며 머리를 숙인다. 청년시절 거칠 것 없이 내닫던 젊음의 패기가 삶속에서 수양되고 인내를 체득하며 겸손해지는 모습과 같다.

쌀미(米)자를 파자하면 팔(八), 십(十), 팔(八)이란다. 볍씨로부터 밥상의 밥이 되어 입에 들어오기 까지는 88번의 과정이 거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밥 먹을 때 밥풀 한 알 흘리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88세 연령의 어르신을 미수(米壽)라고 한다. 긴 세월 삶의 희노애락을 경험하여 선(仙)의 경지에 도달한 삶에 붙여진 말이라고 생각된다.

벼는 예로부터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어찌 보면 벼 속에 살아 온 우리들이다. 지금도 그림속의 초가집을 보면 아늑하고 정감이 가는 것은 그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게다. 소의 주 먹이가 볏짚이었고, 쌀을 담는 가마니와 새끼줄의 원료가 볏짚이다. 또한 동물들의 겨울철 보온재로 사용됐고, 외양간에서 나온 볏짚은 다시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어머니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난방과 취사용 땔감이었다. 요즘도 가끔은 볏짚 불고기라는 이름의 식당을 본다. 된장이 된장 같아지기 위해서는 메주를 반드시 볏짚으로 묶어 말려야 한다는 어느 학자의 연구를 본 적이 있다. 볏짚속의 유익한 세균이 메주를 잘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이제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금(禁)줄 -아기가 태어나면 짚으로 만든 새끼줄에 고추나 솔잎, 숯울 꿰어 대문 위에 다는 줄- 을 달았다.

이런 벼(쌀)이었지만 지난 세월 그 수확량이 모자라 보릿고개라는 말도 나왔고, “이밥에 고깃국 먹고 잘 살아요”라는 말도 나왔다. 1970년대 들어서 식량혁명이라고 할 만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IR667, 수원213호)가 개발됐다. 당시의 다른 벼 품종들 보다 30% 이상의 다수확을 하게 되어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일조했다. 다만 밥맛이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서 통일쌀의 밥맛을 높이기 위해 압력 밥솥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당시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에 파견된 우리나라 농업연구원들은 밤잠을 설치며 연구에 몰두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우수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개발했고,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작품으로 인정 받아 IR667호라고 명명됐다고 한다. 그래서 통일벼는 우리가 지금 시용하는 50원 주화에 모습을 올리게 됐다.

정부는 10월 25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 등 농업관련단체들이 ‘개발도상국지위 포기를 한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집약적 농업이 아닌 작은 면적의 벼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걱정이 커져 유연한 무역 협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11월 11일 - 빼빼로 데이가 아닌 ‘농업인의 날’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5000년 이상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 온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업 경영이 생길까 걱정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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