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박약재는 충현서원유적(도 기념물 제46호)과 충현서원(도 문화재자료 제60호)의 모태인 건물로, 문목공 고청 서기 선생이 1574년부터 1591년까지 유생들을 가르치던 서당 건물이다.
현재 모습의 공주 박약재는 성담 송환기 선생이 쓴 상량문에 따라 '숭정3 갑인3월(1794년, 정조 18년)'로 건축 연대를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문중서당 또는 문중별당의 소규모 건물과 달리 문중에서 서원의 강당 형식을 취하고 있어 희소성이 크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단층 팔작지붕으로 무출목 초익공 계통의 건축 양식이다. 원형을 비교적 잘 보존해 18세기 말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의 경우 높이 약 20m, 수관폭 동 14.5m/서 9m/남 13.7m/북 5.5m, 뿌리 부분 둘레 약 11m, 수령 750년 이상으로, 홍산객사(도 유형문화재 제97호) 서편에 있다.
크기와 둘레 등 규격이 월등하고 고유의 수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국내 은행나무 가운데 수나무로는 드물게 수령이 700년 이상 '노거수(老巨樹)'로 역사성과 자연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예로부터 문묘나 관청을 세울 때 은행나무를 심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홍산객사의 건립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