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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정규직’ 슬픈 약자여!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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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2.10 15:2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이상호 천안아산경실련공동대표
역사는 늘 냉혹했다. 아무리 공존을 부르짖어도 위기가 닥치면 정도와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 약자들의 생존권은 무시되어 왔다. 고대에는 전쟁에서 진 민족은 이긴 민족의 노예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끌려가 치욕을 당했다. 그것이 오늘날 비속어가 된 화냥년이다. 화냥년은 나라가 힘이 없어 생겨난 치욕의 말이지만 그 치욕은 고스란히 약자인 여성에게 돌아갔다. 최근 한일갈등에 불씨를 지핀 위안부 문제도 나라가 힘이 없어 발생한 치욕이었다. 국가 간의 관계건, 개인 간의 관계든, 약자는 위기가 닥치면 늘 처참한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약자는 늘 슬프다.

노동현장에서 약자인 비정규직 철폐를 가장 강하게 내세운 현 정부의 정책이 약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자 상당히 많은 사업장은 인원을 줄이고 경영을 축소하고 자동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바람에 많은 약자가 일자리를 잃고 더욱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은 이미 드러난 이야기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그것을 시행하는데 나타나는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시행 현장에서 역기능이 나타날 수 있음을 현 정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렵다. 무역수지는 계속 하락하고 경기와 성장률은 바닥을 드러내고 기업은 힘들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한국 GM이 휴직 중인 정규직을 복직시키면서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여러 보도에 의하면, 한국 GM은 지난 11월 창원공장 비정규직(도급업체) 직원 600여 명에게 계약 해지통보를 했다. 공장 가동률이 2년째 50% 수준에 머물러 주야 2교대로 하던 근무를 낮 1회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창원공장은 정규직 1500여 명은 해고가 어려워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만 감원한 셈이다.

한국 GM의 사례를 보면, 지난해에 군산공장 폐쇄로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는 등 홍역을 치렀다. 그때도 휴직한 정규직 300여 명은 복직시키고 비정규직 60여 명은 권고사직시켰다. 한국 GM은 휴직자에게 매달 3억4000만원(1인당 112만5000원) 가량의 휴직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담되어 3년 휴직이 예정되어 있던 정규직을 복직시키면서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을 해고한 것이다.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600여 명은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불법 파견”이라고 규정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 GM 창원공장은 경영 악화가 심해 정부와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해고에 나섰다 한다. 노조의 영향이 강한 정규직은 그대로 두고 노동현장의 절대 약자인 비정규직만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국 GM은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한국 GM은 지난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자동차 판매량도 올해 1~10월간 전년 대비 11%나 감소하여 경영은 갈수록 악화했다고 한다.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을 명령하였고 도급 행위가 불법일 가능성은 있지만,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정규직을 옹호하는 정부정책과 정규직들의 강한 노조 성향은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게 한 것이다.

한국 GM의 이러한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례가 앞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저하되는 다른 기업의 비정규직 해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법으로 아무리 강력하게 하여도 회사가 어려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 정부는 어떻게 할까? 한국 같은 반기업 정서나 강성노조가 도움이 될까?

에이미 골드 스타인의 ‘제인스빌 이야기’(이세영 옮김, 세종서적)에 의하면, GM은 이미 미국에서도 2008년 공장 폐쇄로 부유했던 제인스빌을 유령도시로 전락시켰다. 경영이 극도로 악화된 제인스빌 GM은 2008년 12월 23일부터 공장 조립 라인을 멈췄다. 그 바람에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의 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었고 가난에 빠졌으며, 도시는 빈민촌으로 변해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인스빌은 가난한 도시다. 산업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삶, 특히 약자의 삶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기업은 산업의 핵심으로 불린다. 기업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 여파는 수년이 걸리며 어떤 경우는 회복하기 어렵다. 그것은 한 국가가 무너지는 것과 비슷하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쌀이다. 기업이 무너지거나 경영이 악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인간적인 삶을 지키려면 기업을 살려야 한다. 정부는 이점을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들레르의 시(詩)가 또 오른다. “짐승 같은 자의 비위 맞추고자/ 우리가 사랑하는 자는 모욕하고 우리를 구박하는 자에게 알랑거렸다. /비굴한 사형집행인처럼/억울하게 멸시받는 약자를 슬프게 했다"(C.P.보들레르, 자정의 심문)약자도 생존의 위기가 닥치면 더 약한 자를 짓밟는다. 이 밤에 외쳐 본다. ‘비정규직’ 슬픈 약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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