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달력(Calendar)
[아침을 열며] 달력(Calendar)
  •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 승인 2019.1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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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있는 책상 위 달력이 왠지 측은하여 안개꽃 드라이 플라워 한송이를 2019년 달력 앞에다 가지런히 두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덜 미안해지고 2020년 새 달력의 배달이 은근히 설레어지는 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기술한 달력에 대한 정의는 이러하다. 달력은 1년을 날짜별로 달, 날, 요일, 기념일, 공휴일 등을 표기한 책자 형태의 물건이고, 책력은 1년의 시령과 그 날짜를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고 쓰여져 있다.

중학교 다닐때 한문을 담당하셨던 정00선생님께서는 한문교과목을 과학의 원리에다 접목시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그 당시 나는 많이 어렸지만 선생님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매우 특별한다고 생각했었다. 덕분에 중학교 도서관에 비치되어있는 역사관련 책을 빌려다 밤새워 읽었는데 그중에서 고대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에 대한 기억이 꽤나 흥미로웠다.

마야 달력은 천체 관측이 뛰어난 마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마야 달력의 종류는 모두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일년을 260일로 하는 트르킨 달력으로 그 당시, 마야인들의 종교와 의례적인 목적과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달력은, 1년을 360일로 나누는 것인데, 한 해의 마지막 5일을 4년에 한 번씩 6일로 늘렸다고 한다. 즉 위나루를 추가하는 것으로 일년이 모두 365일이 되고 이것이 하얍으로 불리는 태양력이었다.

다음 내용은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의 달력에 대한 설명이다. 달력은 기원전 48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정벌에서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당시 로마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누마력은 한 해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시민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유를 살펴보면 어떤 해는 355일이고, 또 어떤 해는 382일이니,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는 날짜를 가름할 수가 없었고, 여기에다 세금을 거둬들이는 관리들의 임기가 일정하지 않아 서로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달력을 개혁하였는데 이때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포한 율리우스 달력의 특징에는 윤년을 도입했다는 점인데, 초기 태양력의 문제점은 대체적으로 1년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새해가 시작되는 시기가 계절상으로 맞지 않게 되었다. 율리우스 달력이 중요하였던 이유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정기적으로 날짜를 수정했다는데 있다. 방법은 4년 마다 한번씩 윤년을 둔 것인데 실제 1년의 길이는 365. 25일이었다고 한다. 이때 1년 365일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4년마다 한 번씩 하루를 더해서, 366일로 정하는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각 달의 이름에 로마 고유의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즉, 새해 첫 달은 군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딴 마르티우스(Martius),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의미를 가진 아브릴리스(Aprilis)가 2월, 봄의 여신 마이아(Maia)의 달을 뜻하는 마이우스(Maius)가 3월,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최고의 여신인 유노(Juno)의 이름을 딴 유니우스(Junius)가 4월, 그리고 다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5월, 여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섹스틸리스(Sextilis)가 6월이었다. 또한 일곱 번째 달을 의미하는 셉템베르(September)는 7월, 여덟 번째 달을 의미하는 옥토베르(October)는 8월, 아홉 번째 달을 의미하는 노벰베르(November)는 9월, 열 번째 달을 의미하는 디셈베르(December)는 10월이었다. 초기 로마의 달력은 1년이 열달로만 돼 있었는데 그 이유는 겨울철이 농한기이므로 마지막 두 달에는 아예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후 기원전 8세기에 누마 폼필리우스 왕이 달력을 개혁하면서, 열한 번째 달과 열두 번째 달에도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문의 수호신인 야누스의 이름을 딴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11월, 한 해 마지막에 벌였던 축전 페브루아(Februa)의 이름을 딴 페브루아리우스(Febriarius)가 12월이었다. 달력에 관한 이야기는 좀더 살펴보아야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1752년 영국의 왕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정비된 달력이다. 고대로부터 여러 왕들은 달력 정비에 공을 많이 드렸는데 아마도 ‘달력과 권력’을 동일시하였던 그 당시의 정치적 상항이 가미된 풍경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