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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나이 한 살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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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1.01 15: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김정호 백제문화원장
해가 바뀌었다. 새해를 맞았다. 한 살을 보탠다. 나이를 먹는다. 나이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다. 나이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겪고, 험한 일도 겪게 된다. 획기적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온다.

나이 한 살이 그리 대수로울까마는, 한 살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경우가 많다. 나이는 삶의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공공 행정은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유아에서 어린이로,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진입한다. 취학연령, 부양가족 연령이 각각 또렷하다. 10대의 풋풋함, 20대의 혈기, 30대의 열정, 40대의 성취, 50대의 꿈, 60대의 지혜, 70대의 회고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입학을 하고, 학년을 올라가고, 졸업을 한다. 취직을 하고, 일을 하고, 정년을 맞는다.

예기(禮記)에서는 20세를 약관(弱冠)이라 칭했다. 갓을 쓰는 성년이 된다. 20세 전후는 몸은 다 자랐지만 마음은 약하고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보호법에서는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을 청소년에서 제외한다. 19세가 되면 담배와 술을 살 수 있다. 청소년출입금지구역을 제재 받지 아니하고 들어갈 수 있다. 희열이 솟는다. 성년이 되었다는 사회적 공인이다.

투표연령이 18세로 내려갔다. 국민주권의 실행범위가 넓혀졌다. 우려보다 긍정적 효과가 크리라 믿는다. 총선에서 그들의 힘을 보고 싶다. 군 입대, 공무원 임용, 주민등록증 발급, 운전면허 취득자격 연령은 만 18세 이상이다. 민법상 성년 연령 19세와 다르다. 혼돈이 온다. 성년연령을 선거연령과 일치시켜 혼돈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인적사항에는 생년월일을 표기한다. 사람을 대표하는 요소에 이름과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올해에 성년이 되거나, 회갑을 맞거나, 정년퇴직을 하거나, 연금 수급을 개시하거나, 경로우대증을 발급 받는 사람들은 나이 한 살을 실감하게 되리라.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 온 햇수는 돌, 살, 세(歲)로 센다. 연령의 높임말은 연세(年歲), 춘추(春秋)라고 한다.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십니까?” “외람되지만, 춘추가 얼마나 되시는지요?” 연령에 따라 존댓말이 발달했다. 형님, 선배님, 어르신 모두 나이를 잣대로 한다. 앉는 좌석도 상석과 하석이 있다. 나이에 따라 위아래가 명쾌한 질서를 유지한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오래된 광고 멘트가 의좋은 형제 이야기와 겹쳐 떠오른다.

우리의 나이에 대한 생각은 모순투성이다. 어린아이가 진중하면 애늙은이라고 하고, 어른이 아이 마냥 천진난만하면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냐.”고 한다. 묵은 솔이 광솔이라고 하고, 나잇값이나 하라고 핀잔을 한다. 나잇값은 얼마인가? 나이를 먹으면 제약이 많아진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여야 한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은 심한 언어다. 나도 예외는 아니리라. 주변 상황 파악 못하고, 철이 없는 무개념, 평생 나잇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부끄럽다. 내 나잇값은 얼마인가? 사람의 나이는 외모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모르는 집단에서 나이를 숨기거나, 속이는 일은 흔하다. 시비가 붙기도 한다. 집 나이, 호적 나이가 다른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은 호적 나이다. “민증 까 보자.”며 웃는다.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 헛나이를 먹었네, 그려. 나이는 지혜를 상징한다. 연장자 우선, 그러나 고령자는 아니다. 고령자는 임금피크제 우선 적용대상이다. 연령제한에 하한과 상한이 있다. 하한에 걸려 길이 열리지 않는 사람은 나이 먹기를 고대하고, 상한에 닿아 길이 막히는 사람은 나이 먹은 것을 아쉬워한다.

나이는 사람만 먹는 게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이를 먹는다. 밤하늘의 별도 나이를 먹는다. 밝은 별, 푸른 별, 어두운 별이 구별된다. 나무에게는 나이테가 있다. 나이테의 숫자는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나타낸다. 연대를 알려준다. 나이테 속에는 많은 것들이 응축돼 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생물은 없다. 시간은 뒤로 가지 않는다. 나이는 뒤로 가지 못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무리들과 만난다. 제발 나잇값 좀 하시라는 따가운 시선들과 만난다. 나이를 들먹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자들과 만난다. 육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 생리적 나이테와 생각의 나이테, 간극이 크다. 나이를 먹으면서 배가 나온다고 걱정한다. 나잇살이 뱃살이다. 곱게 나이를 먹고, 곱게 살을 길들여야 한다.

2020, 범상치 않은 숫자다. 터닝 포인트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한 살 더 먹어 변화를 실감나게 겪어야 하는 사람이 많다. 꼭 이루어내야 하는 일이 어렵다. 나이 한 살에 당차게 맞서기를, 옳고 바른 개념이 빛나기를, 박수를 보낸다.

해가 바뀌었다. 해맞이를 하는데, 한 어린아이가 갸우뚱거린다. “어! 바뀐 거 없는데. 어제 떴던 그 해인데?” 순진무구한 호기심, 그렇다. 해는 마음속에서 바뀌는 거다.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 소망과 각오를 바꾸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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