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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흰 쥐의 해’ 지혜롭고 부를 가져다주는 존재

'쥐' 담은 지명 전남에 가장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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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1.01 19:40
  • 기자명 By. 이하람 기자
민들레 잎을 먹은 쥐.(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민들레 잎을 먹은 쥐.(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삼국사기 신라 혜공왕 5년(769) 11월 기록에는 "치악현에서 쥐 8000 마리가 평양 방향으로 이동했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雉岳縣鼠八千許向平壤無雪)는 대목이 있다. 쥐가 불길한 현상을 암시하는 동물로 묘사된 것이다.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 이야기에도 쥐가 등장한다. 신라 비처왕(소지왕)이 만난 쥐가 사람 말로 "까마귀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소서"라고 하자 까마귀를 쫓았는데, 그때 조우한 노인이 편지를 줬다.

봉투에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열지 않다가 일관(日官)이 한 사람은 바로 왕이라고 하자 내용을 확인했더니 사금갑, 즉 가야금 상자를 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에 따르자 간통 중인 승려와 궁주가 나타났다.

올해 경자년(庚子年) 띠동물인 쥐는 이처럼 전통적으로 예지력을 지닌 동물로 여겨졌다. 민속학자인 김종대 중앙대 교수는 지난 24일 국립민속박물관이 연 강연회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쥐는 지혜로운 능력자로 그려졌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발표문에서 무가의 일종인 '창세가'를 소개하고 "쥐는 조물주로 등장한 미륵보다도 더 뛰어난 지혜를 갖춘 존재로 표현됐다"고 밝혔다.

이어 쥐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과 1년에 6~7회 출산하는 다산 능력 때문에 부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민간속신어사전'을 보면 "쥐가 도망가면 집안이 망한다/ 쥐가 독에 빠지면 복이 나간다/ 쥐가 집안에 흙을 파서 쌓으면 부자가 된다"는 글이 있는데, 쥐가 재물과 연결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쥐는 각종 설화에서 인간을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나무꾼과 선녀' 일부 이야기에서 쥐가 나무꾼이 시련을 극복하도록 돕는 동물로 나오는데,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사람들이 쥐를 긍정적인 동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곡식을 훔쳐 먹고 나무를 쏘는 습성으로 인해 간신과 수탈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심지어 탐관오리와 쥐를 동일시하는 문학 작품도 있었다.

빙허각 이씨가 1809년에 쓴 '규합총서'에는 쥐를 없애는 법에 대한 항목이 있다. 검은 개 피를 게에 부어 사흘을 사르면 쥐가 모이고, 정월 첫 진일(辰日)에 쥐구멍을 막으면 다시는 뚫지 않는다는 등 주술적 내용이 많다.

김 교수는 "사람으로 둔갑한 쥐, 도둑의 혼으로 알려진 쥐 이야기를 보면 쥐는 부정적인 동물"이라며 "속담에서도 쥐는 작고 사소하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됐다"고 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쥐는 부정적 면모가 강하기는 하나, 그런 면 때문에 쥐띠들에게 부지런함의 긍정적 평가를 한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쥐는 전국 각지의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충남 서산 운산면 용장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강당골이라 불리는 곳에 쥐바위가 있다.

강당골은 쥐를 닮은 형국으로 100여개의 사찰이 모였을 만큼 불교의 성지로 불렸다.

이 일대에는 국보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해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있다.

강당골 옆 하천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쥐바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고양이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하천 다리가 없던 시절 쥐 모양을 닮았던 강당골 사찰들은 번성했지만, 고양이 바위가 있는 절에는 스님들만 남을 정도로 쇠퇴해 갔다.

하지만, 하천에 다리가 생기자 쥐 바위가 있던 강당골 사찰들은 망했고 고양이 바위가 있는 사찰에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고양이가 다리를 건너 쥐를 모두 잡아먹으면서 강당골 사찰들이 망했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쥐와 관련한 땅 이름은 전국에서 전남에 가장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9일 전남도에 따르면 쥐를 담은 전국의 지명 64개 가운데 39%인 25개가 전남에 몰려있다.

전북 9개, 경남 6개, 경북 5개, 대전 3개 등이 뒤를 이었다.

쥐는 예로부터 재해를 미리 알리는 영물로 여겨졌다. 섬과 바닷가에서 뱃길의 안전을 지켜주는 마을 수호신으로 숭배 받았다.

쥐가 숭배와 혐오를 동시에 받아온 이중성이 반영된 사례도 있다.

전남 곡성군 오산면에서는 쥐가 다닌다는 뜻의 현서(縣暑)마을이 폐촌했다가 어진 세상을 만들자는 선세(善世)마을로 이름을 바꿔 살아났다.

정애숙 전남도 토지관리과장은 "십이지신 가운데 쥐를 반영한 지명은 많지 않은 편이나 각각 재미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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