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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쥐띠 해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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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1.22 17: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모레면 설이다. 곧 경자년의 시작이다. 은행에서 얻어온 달력에 2020년 경자(庚子)년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庚은 흰색으로 보아 올해는 흰쥐 해라고도 한다. 경자년 하니 문득 어렸을 때 일이 떠오른다. 같은 마을에 두어 살 위인 이웃 누님 중에 ‘경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었다. 경자년인 그 해에 우리 또래들은 그 누님만 보면 “올해는 경자년, 경자년”하고 놀려대곤 하였으며 누님은 집에 가서 이름 잘못졌다고 부모님께 울면서 대들곤 했었다. 벌써 60여 년 전 일이다.

그런 경자년의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쥐띠’라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딱히 ‘쥐띠’라기보다는 ‘쥐’에 대한 기억이다. 1960년대는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고 쥐가 전염병을 옮긴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활발했고, 일정한 날을 정하여 “오늘은 쥐약 놓는 날”이라 하여 동에서 쥐약을 배부하고 전국적으로 일제히 쥐약을 놓기도 했다. 마을의 큰 행사였기에 어린 우리들에겐 재미있는 놀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쥐꼬리”과제는 지금 생각해도 혐오스런 일이었다.

누구의 발상인지는 몰라도 쥐 잡기의 효과를 올리고자 했는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가져오도록 과제를 제시했고, 쥐꼬리 갯수에 따라 학습장이나 연필을 주기도 했다. 교장 선생님은 아침 조회 시간에 “우리 학교가 00시에서 쥐꼬리 수집 00등이라”고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쥐꼬리를 많이 가져 오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었다. 쥐꼬리를 제출하지 못하면 청소나 꾸중을 듣는 벌칙이 있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아이들 쥐꼬리 잘라주기에 온 가족이 힘을 합쳐야 했다. 자식이 많은 집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쩌다 두엄더미나 풀숲에서 죽은 쥐라도 발견되면 친구들 간에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움도 잦았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쥐가 “띠”에 들어왔나 미워하기도 했다. 그런 쥐가 십이지지의 첫째이다(그래서 庚子年의 子는 ‘아들자’가 아니라 ‘첫째지지자’로 뜻을 새긴다) 전설에는 천신이 동물들을 경주시켰을 때 소의 머리에 올라탔다가 결승점에서 쥐가 뛰어내려 첫째가 됐다고도 하지만, 어쨌던 쥐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들어 있다.

민족마다 식 문화가 다르듯, 동남아의 한 나라는 쥐고기를 잘 먹는단다. 그래서 쥐고기 시장도 있고,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라고 한다. 하긴 오래 전 어른들게 들었는데 식탐하는 아이들에게 쥐고기를 먹인다는 민간처방도 우리에게 있기는 있었다. 그렇지만 왠지 혐오감으로 썩 받아들이기엔 좀 거부감이 든다.

쥐는 남극과 북극, 높은 산, 심지어는 배에도 있어 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하여 다산과 민첩함의 의미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래서 “밤말은 쥐가 듣고…” , “쥐 구멍 들락 날락하듯”, “쥐 구멍에도 볕들날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쥐가 고양이를 문다”등 속담도 쥐와 관련된 것이 많다. 서양에서도 “smell rat-수상하게 여긴다”, “rat race-치열한 생존 경쟁” 등 관련 숙어가 있다. 어쩌면 쥐의 역사도 인류와 함께 해 온 듯 하다.

‘톰과 제리’, ‘미키 마우스’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덕분에 쥐는 어느 사이 친근한 캐릭터가 됐고, ‘닌자 거북’에서는 인품이 뛰어난 스승으로도 등장하여 쥐가 단순히 먹거리를 축 내고 전염병을 옮기는 나쁜 동물이 아닌 듯 보여주기도 한다. 6세기, 14세기, 19세기에 전 세계에 유행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서양의 역사를 바꾸게 한 흑사병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어쨌던 올해는 쥐띠 해다. 해마다 연초면 그 해의 띠를 놓고 희망을 담은 의미부여를 하며 목표하는 소망을 세운다. 비록 양식을 축 내고, 더러워 보이고 전염병을 옮긴다 해도 쥐띠 해에 대한 의미로 다산과 풍요, 민첩함과 부지런함,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는 삶의 지혜가 풍성하게 넘치는 올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특히 인구 절벽이라는 국가적 큰 과제가 해결되어 올해는 건강하고 씩씩한 후손들이 많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경제 전쟁이라는 국가 간 경쟁에서 지혜롭게 대처하여 우리의 삶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4월의 총선에서는 ‘닌자 거북이’들을 가르친 스플린터 사부 처럼 품격이 높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선출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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