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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졸업식을 취소시켰을까?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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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2.04 13: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마지막에 한 말이다. 아직도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이런 졸업식 명언을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듣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졸업식 취소 소식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식 취소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을 감안하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정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발생한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고, 하루에 확인되는 환자수도 2천명 가까이로 급증했다. 우리나라도 증가 추세에 있고, 2차 3차 감염자도 발생된 가히 재난상황이다. 졸업식이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사라고 한들 전염성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는 이때,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모이는 졸업식을 하겠다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정책결정을 연구해 온 필자에게는 결정과정에서 발견되는 자연스런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학교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취소될 것이고, 입학식도 그럴 것이다. 감염의 확산 정도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켄트 위버(Kent Weaver)는 결정자에게는 비난회피 동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결정과 관련된 어떤 압력이 있을 때, 결정자는 호평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난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정책결정자는 ‘좋은(good)’ 정책만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도 하기 마련이다. 위버의 주장을 따른다면, 졸업식을 취소하기로 한 결정은 호평받기를 추구한 좋은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졸업식 자체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비난회피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이 된다. 참석자들의 안전을 외면한 무모한 결정을 했다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결정자의 동기가 고려된 결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비난을 회피하는 결정을 하였다면, 결정자는 향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책임의 문제로부터 회피하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졸업식을 취소한 것은 참여자의 안전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인데 뭐가 문제냐고, 심지어 비난받을 일이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염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졸업식을 진행하겠다는 학교들이 있다면 좀 상황이 달라진다. 나아가 우리 학교만 졸업식을 취소하였다면 비난회피 전략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비판은 많아지고 더욱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졸업식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비난회피 전략이 있다. 하나는 졸업식 취소에 동참하는 방법이다. 우리 학교만 취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은 분산된다. 다른 하나는 졸업식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졸업식만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 같은 학생들이 모이는 행사를 연이어 취소한다. 이것만은 아니지만, 비난회피 전략은 다양하고 어떤 결정에서도 일상적이다.

과거 감염병과 같은 긴급재난이 발생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재난이 발생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부는 큰 비난을 받았다. 나아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감염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민간보다 먼저 감염지도를 만들지 못했다고 등등. 벌써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하여 비판이 거세어지고 있다. 정부대응도 비판도 과거와 다름이 없다. 비난이 가증될수록 정부의 비판회피 동기는 커질 것이고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는 동기는 감소할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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