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정철 3대손 정필 묘지석 미국서 발견
송강정철 3대손 정필 묘지석 미국서 발견
  • 최종암 기자 cja0203@dailycc.net
  • 승인 2020.02.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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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장의 청화백자로 제작, 형의 죽음 애도
정호(鄭澔)가 쓴 정필(鄭泌)의 묘지석
정호(鄭澔)가 쓴 정필(鄭泌)의 묘지석
[충청신문=내포] 최종암 기자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조선 중기 문신 송강 정철의 3대손인 정필(鄭泌)의 묘지석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영일정씨문청공파(회장 정태윤)와 함께 국내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재미동포가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정필의 묘지석은 영의정을 지낸 동생 정호(鄭泌)가 숭정(崇禎) 갑신(甲申) 후 82년인 을사년(1725) 7월에 쓴 것으로 총 6장의 청화백자로 만들어 졌다.

묘지석은 영일(迎日) 정씨 가문의 정호(1648~1736)가 형인 정필(1639~1708)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삶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호는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조선 가사 문학의 대가이자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고손으로, 본인 역시 영조 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했다.

묘지의 주인인 정필은 정호의 이복형이며 이들의 아버지인 정경연(鄭慶演, 1604~1666)은 초취(初娶)인 덕수 이씨(德水 李氏)와의 사이에서 정주(鄭澍), 정린(鄭潾), 정필을 두었고, 후취(後娶) 여흥 민씨(驪興 閔氏)와의 사이에서 정섭(鄭涉), 정호, 정진(鄭津), 정온(鄭溫), 정영(鄭泳)의 여덟 아들을 두었다.

1639년(인조 17) 충주에서 태어난 정필은 1966년(숙종 25) 경기전참봉이 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상의원별제를 지냈으며, 1708년(숙종 34) 6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갈동에 위치해 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은 “미국에서 발견된 이후 묘지석의 진위 확인과 후손들과의 협의를 진행하면서 묘지석이 꼭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유품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소장자에게 미국의 경매에 내놓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한 상태이며 귀한 유물이 연내 귀환할 수 있도록 후손과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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