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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견뎌내기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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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2.25 14: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공연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달 전부터 공연예술인들은 전화 받는 게 두려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걸려오는 전화 족족 공연 취소에 관한 통보나 유감을 전하는 내용이다 보니,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다가도, 이제는 또 취소 통보겠거니 하며 체념하고 전화를 받는 지경이다.

보통 공연기획은 짧으면 반년, 길게는 2~3년 전에 준비한다. 이는 공연장 대관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예술의 전당으로 대표되는 대형 공연장의 대관은 최소 10개월 전에 이미 준비된 기획안을 제출하면 이후 엄정한 대관심사를 거쳐 공연을 승인 받는다. 공연기획 측에서는 심사를 받을 기획안에 예산규모, 출연진, 무대효과 및 진행계획을 명시해야하고 이런 내용을 대략 1년 전에는 결정하고 모양새를 꾸리고 있어야 한다. 관객이 몰리는 주말과 봄가을, 연말시즌 공연 시즌에는 수십여개의 단체가 같은 날 공연을 신청하게 되니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으로 심사를 거쳐 간신히 대관을 따내어 공연일정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대형 공연장이 아닌 중소형 공연장들도 일정한 틀로 승인심사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공연이 결정되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수개월간 연습을 한다. 혼자가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시간과 돈을 들여 연습장소를 구하고 공연을 준비하다보니 이번 같은 예상치 못한 재난 재해에선 공연 기획측은 쉽사리 공연 취소를 결정하기 힘들다. 장기공연을 주로 하는 뮤지컬과 대형예산이 들어가는 오페라의 경우는 대책회의가 꾸려지지만, 대개는 눈물을 머금고 조기종영이나 공연취소로 가닥을 잡게 된다. 기획예산의 규모가 크다보니 공연이 길어지거나 규모가 큰 경우엔 입장관객수의 급감은 치명적이고, 진행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니 제작 중단이 그나마 손실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이다. 대관 승인시점부터 홍보비를 비롯한 제작비는 매일 지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공연기획들의 공연 취소 결정을 바라보는 소규모 공연단체들과 개인 독주회를 앞둔 연주자들은 애간장이 탄다. 전술한대로 기획과 대관에만 최소 1년을 준비하고 수개월 공을 들인 연주를 하루아침에 엎겠다고 선언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적,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지만, 다시 공연을 기획하려면 길게는 1년 후의 대관심사를 다시 준비를 하던지, 변경되고 취소된 수시대관을 노려야하는데, 무엇보다도 그 까다로운 대관경쟁을 처음부터 다시 거쳐야한다. 공연을 취소하고 변경한다고 해도 어렵사리 대관을 따낸 장소에서 다시 공연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결국 사정 모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공연을 진행할 수밖에 없고, 이쯤 되면 경제적 손실을 가늠할 여력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연주자가 강행 의지가 있어도 주관 연주장이 경계태세 격상에 따라 공연장 폐쇄를 결정해버린 케이스엔 정말로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다.

앞서 말한 상황 외의 공연문화행사들도 재공연이나 연기된 공연에서는 인적 물적 변화가 반드시 수반된다. 공연내용과 구성을 다시 시간을 들여 여러 명이 모여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연 예술인들은 단체소속이 아닌 프리랜서들이다. 후속 공연들을 조정하며 겹치지 않도록, 혹은 다른 공연이나 스케줄에 방해되지 않도록 면밀히 조정해놓은 일정들은 공연취소나 변경통보와 함께 순식간에 공중분해 된다. 그래서 예정된 공연이 전면취소가 아닌 단순연기로 가닥이 잡혀도 연주자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다. 변경된 공연 일정이 자신의 다른 일정과 겹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이 연기되면 연주자들도 바뀌기 마련이다.

신종플루. 메르스 등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선 밀집공간에 모이는 실내 공연장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세월호 침몰 때엔 전 국민의 슬픔 뒤로 각종 야외 공연들과 축제공연들이 전면 취소되거나 자발적으로 철회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공연을 취소하더라도 시간적 물적 인적 경제적 피해는 반드시 발생한다. 일련의 과정 중에, 공연 제작자나 기획사가 문을 닫고, 연주자들이 보릿고개를 오롯이 견뎌내는 이 그림이 어느덧 익숙해진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모두가 힘든 가운데 공연예술인들이 겪어내는 모양새도 한번쯤은 들여다보며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이 상황을 견뎌내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과 기도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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