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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삼월, 온전한 봄을 기다리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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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3.03 14: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창 너머 너른 들녘으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농부의 발자국을 듣기라도 한 듯 반쯤 열린 비닐하우스 안에는 이름 모를 모종들이 푸릇푸릇 초록으로 짙어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산수유나무엔 가지마다 노란 파스텔 꽃눈을 달기 시작했다. 과거의 생이 있었으리라 짐작조차 어려운 고목에서도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둣빛 싹이 솟아나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 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지난겨울 초입에 집안으로 들여 동고동락했던 화분들을 볕이 잘 드는 양지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호스를 이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뿌려 한껏 생기를 돋운다. 오늘도 재택근무로 집 밖을 못 나가니 겨우내 굳게 닫혔던 창문을 활짝 열고 묵혔던 먼지를 털어내며 자잘한 집안청소로 하루를 소일한다.

두 달 가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저런 흉흉한 소식들로 세상 안팎이 어수선하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노출된 환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고, 어느 지역 한 대형마트에는 식료품과 생필품의 사재기를 넘어 이젠 아예 장보러 가기도 꺼려해 온라인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는 뉴스가 우리들의 평온했던 일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상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를 이리 오래 곁에 두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학교는 한창 개학과 더불어 입학식의 설렘으로 가득할 공간이건만 그 어디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학교마다 모든 학사 일정이 뒤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현장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기로 했다는 기사도 들려온다. 학교 잔디밭 가득 봄이 내려앉아 온갖 생명들을 깨우는 이 아름다운 계절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십 여 년 전 어느 봄날, 엄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던 기억이 나에게는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내 생애 첫 입학식을 위해 며칠 전부터 새 책가방과 새 옷과 새 운동화를 사 주셨다. 아무리 아껴도 소금이 절반인 당신의 낡은 금전출납부를 쪼개고 쪼개어, 이제 곧 알을 깨고 밖으로 나아가는 나의 첫 걸음을 축하해 주신 것이다. 새로 산 연분홍빛 겉옷의 오른쪽 가슴에는 하얀 손수건을 각 지게 접어 핀으로 고정시켜 주시고 손이 더러워 졌거나 콧물이 나왔을 때 요긴하게 쓰라며 그 쓰임새도 덧붙이셨다.

처음으로 내 집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 교문을 들어설 땐 두려움 반, 설렘 반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요동을 쳤다. 엄마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던 걸음은 어느새 당신의 치마 뒷자락을 붙들고 멈춰 서서 낯선 환경, 많은 사람들을 겁내하기도 했다. 다소 소심하고 숫기도 없었지만 점점 자리를 찾아가는 학교생활과 하루 한 뼘씩 가까워지는 친구들,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는 공부재미에 빠져 이른 아침 밥숟가락 놓기 무섭게 학교로 내달리곤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가슴 벅찬 생애 딱 하루뿐인 초등학교 입학식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다니 부모들도, 아이들도 그리고 교사들도 하루하루 안타깝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싱그러운 삼월이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내일(5일)이니 이제 봄은 점점 더 깊숙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따스한 기운이 긴 겨울을 몰아내고 대지의 온갖 사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우리들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일상은 이제 물러나고 살아 움직이는 삼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아이들은 입학식을 치루고, 부모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라고 읊은 이성부 시인의 시 ‘봄’처럼, 부디 이 어려운 상황이 하루빨리 지나가고 치유되어 우리 모두 행복한 웃음으로 만나는 온전한 봄날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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