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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블랙스완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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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3.31 15:5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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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의 관용어구중에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말이 있다.
원래 백조는 하얀 것이니 검은 백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기존의 통념이었다. 이름도 백조(白鳥)아닌가. 그래서 다른 의미에서는 그저 상상의 개념을 블랙스완이라 불렀다. 용이나 봉황 같은 존재 말이다. 그래서 차이콥스키의 작품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 때는, 주인공 백조역의 오데뜨가 통상 라이벌 흑조인 오딜을 같이 연기한다. 백조와 흑조가 무대 위에 동시에 나올 일이 없기에 주인공이 1인2역이 가능했고, 그렇게 백조와 흑조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암묵적인 동의였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걸 뒤엎고 1790년에 한 학자가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그러니까 검은 고니를 찾아내고 학계에 보고한다.
흑조는 실존했다. 없어야 하는 존재가 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불가능할거라 여겨진 일이 실제로 생기는 것'을 블랙스완 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가 2007년, 경제위기 직전 해에 탈레브라는 경제학자의 저서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다시 유명해졌다. 금융위기와 대폭락을 예언했는데 그게 딱 들어맞아서 더 유명해졌다. 그래서 ‘블랙스완’이라 일컬을 수 있는 사건의 정의는 이렇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건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장이 큰데다, 예측 불가능이어서 시간이 흘러 훗날에나 돌이켜볼 수밖에 없는 사건.’

최근의 코로나19를 경제계에서는 블랙스완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용어가 공연 예술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공연계에 블랙스완이 나타났다.
예전에도 공연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던 사건들이 있었다. 사스(SARS)부터 메르스. 그리고 신종플루로 불리던 유행성 독감까지. 호흡기로 전파되는 바이러스들이니만큼 밀집된 장소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행위가 주요 전파경로로 지목되면서 실내공연위주의 공연계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또 여러 국가적 애도 상황이나 재난 상황때마다 공연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회복하는데 길게는 1년 가까이나 여파가 있었다.
이번 코로나19가 가져온 흑조는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파급력이 이제껏 경험치 못한 영향을 가져왔다. 닥쳐온 상황과 앞으로 예측되는 상황은 여러 학자들이 분석하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게 문제다.

무엇보다도 이번 블랙스완이 예체능 쪽에 가져온 파급력이 전대미문 급이다. 공연예술체육계는 기본적으로 작품과 경기의 과정에 있어 그걸 지켜보는 사람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간의 결과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결과물을 평가해줄 관객이 못 모이는 상황을 넘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공연과 경기주체가 모여 연습하고 공연하는 상황 자체가 차단되었다. 사상초유로 프로리그들이 중단 되었고, 공연장들의 상반기 공연은 거의 취소되면서 차후 실시여부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예체능 쪽 교육계는 지금 쑥대밭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체육계 쪽은 심각하다. 각종대회가 취소돼 수상실적을 쌓을 기회가 사라졌고, 기량향상을 위한 경기와 단체 연습자체가 막혀서 홀로 트레이닝중이다. 타자 없는 투수, 투수 없는 타자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예체능은 1:1 PT(personal training) 개인지도로 세심하게 오류를 수정하며 방향을 설정하는데 이게 힘들어졌다. 사람이 얼굴 보며 모여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교육현장은 매일매일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일부 대학교에서는 실시간 화상 레슨으로 실기과목교육을 진행 중인데 이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 일단 마이크와 스피커로 전달되어지다보니 음색과 실제 볼륨을 가늠할 길이 없고 시연자의 세심한 근육의 사용과 호흡의 사용여부를 체크하는 일은 어림도 없다. 그게 진작에 가능했다면 대가들의 유튜브 동영상만 봐도 실력이 늘어야 하거늘, 실상은 화면과 마이크 너머 울리는 소리는 그 방향성과 공간감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개인지도를 넘어 합주나 합창의 화상연습은 상상도 힘들다. 무슨 수로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빚어내는 관악과 현악의 울림과 밸런스 조율, 그리고 성악 파트간의 빛깔과 균형을 잡아낸단 말인가. 그럼에도 수업결손을 막기 위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정보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존재감이 이토록 크리라고 예측도 못했지만, 더 무서운 건 이 유기물이 휘젓고 떠난 후의 나날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더욱 막막하다.
진짜 블랙스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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