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된 어린 소년이 부르는 이 노래가사가 어느날 갑자기 내 삶의 시계바늘을 멈추게 하였다. 트롯쟝르 보다는 발라드 장르가 7080세대의 추억과 낭만을 그렸고 지금껏 나의 음악세계를 보듬켜 안았었는데 웬 트롯가사가 어느날 갑자기 이다지도 내 가슴을 후벼 파는지 스스로가 놀라웠다.
여백이란 회화에서 실제로 사물이 존재해야 할 곳에 어떠한 효과 없이 공간을 비우므로써 혹은 마치 미완성으로 보이는 듯 한 과감히 생략된 공간을 의미한다. 사실 그간 나의 삶에서 여백이란 것이 있었을까! 이 노래가사처럼 그간 내 삶의 지난 시간들은 무엇을 향하여 달려왔고 내 발자국을 뒤돌아보았을 때 도닥도닥 보듬어줄 수 있는 인생의 여유로움은 존재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의 인생의 여백은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서 불렀던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긴 여운으로 울리는 시간이었다. 또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울부짖던 바람이 남긴 향기가 그윽하게 감도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득 채울 수 있으면서도 채우지 않고 남겨 둔 공간, 적당하게 절제된 욕망 뒤에 남아 있는 마음, 이것 또한 우리 모두의 삶의 여백이 아닐까 싶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사람의 마음에도 빈자리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여백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텅빈 여백을 메꾸기 위해 각자의 욕심과 돈, 명예로 허둥거리며 급하게 빈 공간을 채우려 한다. 법정스님의 글 중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종속되어져야 비로소 여유를 가지게 된다.
여백이 아름다운 것은 꾸밈없는 단순함과 부족함에 있다. 단순함에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고 부족함에는 삶의 위선과 억압이 존재하지 않고 자유롭고 소중한 것들이 자리한다. 여백이 간절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으로 인한 있음이 빛이 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깊고 넓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어 주위를 돌아다보니 나는 그저 넘치는 동료보다는 모자람이 존재하는 동료에게 더욱 편안함을 가졌고 여유로움에 끌렸던 것 같다.
시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시인 도종환님의 글 중에 여백과 관련된 글이 있어 몇자 적어본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들판일수록 좋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한 장일수록 좋다/ 누군가가 와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빛깔의 여백으로 가득 한 마음 그 마음의 한 쪽 페이지에는 우물이 있다/ 그 우물을 마시는 사람은 행복하다/그 우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마르지 않고/ 나누어 마시면 마실수록 단맛이 난다.’
수 많은 단어 중에서 모자람 이라는 단어가 정겨운 것은 누구나 모자람이 있으면 채워도 보고, 줄이기고 해보고 없애보기도 하고, 더러는 비워도 볼 수 있는 여유가 많아서 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두 마리의 개를 운명적으로 키우면서 산다고 한다. 선입견과 편견인데 이 두 마리의 개로 인하여 더러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인생의 여백을 메꾸면서 살아 온 것은 어리석은 집착과 미련이었고 슬픈 것은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한번도 맛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아름답고 성숙한 향후의 내 삶의 여백은 13세 어린소년이 부른 이 노래가사를 되새기며 조금은 늦었지만 용기내어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