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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프리지어 한 다발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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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4.20 10: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프리지어 한 다발을 받았다. 사무실에 꽂아두었더니 활짝 피어 향기롭다. 그 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인데 마치 처음 보는 양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프리지어를 선물한 커피숍 사장님의 마음이 더해져 한동안 행복할 것 같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 모퉁이를 돌면 커피숍이 하나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커피집은 따로 있어 그곳은 갈 일이 없었지만 시원한 인테리어가 눈을 띠는 집이었다. 큰아이가 사무실에 놀러 와서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말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요즘 불면증에 시달려 오후에는 카페인 섭취를 피하고 있어 큰아이만 연한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그랬는데 두 잔을 주면서 하는 말이 어차피 내린 분량이라며 엄마랑 같이 마시라고 캐리어에 넣어 주었다. 그 마음이 예뻐 고맙다고 들고 나왔다.

요즘 커피숍에 가면 1인 1잔이 기본이라며 한잔을 덜 시키면 눈치를 봐야 하고 나누어 마시겠다고 컵이라도 하나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주지 않는 곳이 많다. 물론 1인 1잔을 시켜야 하지만 대부분 점심식사를 한 후에 가는 경우가 많아 나눠 먹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하지만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사람 수 대로 시키고 다 마시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날 여사장님의 마음을 본 후 그 커피숍 단골이 되었다.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한가하더니 요즈음 점심시간에 가면 자리가 없어 기다리고는 한다. 어쩌면 나처럼 그 사장님의 마음을 보고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씩 커피를 1인 1잔 시키지 않아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조심스레 나누어 먹겠다고 컵 하나 달라고 하면 큰 스푼까지 준다. 그 스푼으로 나누면 흘리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그러니 그 집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갔더니 코로나로 어려운 화훼 농가도 도울 겸 오전은 한가한 시간이라 직접 농가에 가서 꽃을 사 온다며 생화를 테이블마다 꽂아두었다. 꽃향기가 커피를 마시는 내내 코끝을 간지럽혀 ‘봄이 왔구나’ 설레었다. 나오는데 프리지어 한 다발을 내밀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이 봄에도 우리는 지인들과 꽃소식을 사진으로 전하며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었다. 꽃은 오랜 옛날 삼국시대 늙은 노인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로 부인에게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꽃을 꺾어 받쳤다. 아직도 우리는 그 헌화가를 암송하며 꽃을 보면 즐겨 인용하고 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제 80이 넘는 지인을 만났는데 요즘 들어 벚꽃이 다시 보인다며 벚꽃 예찬을 한참이나 했다. 복숭아꽃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감곡으로 드라이브를 갔는데 소녀처럼 ‘어여쁘다 어여쁘다’를 수십 번은 하셨다. 살아오시면서 본인이 기억하는 것만 70번 이상 해마다 피었다 지는 꽃을 보는데도 피어나는 꽃은 늘 예쁘고 지금도 꽃다발을 받으면 설레신단다. 또 어떤 것에 한 번 감탄하면 다음번에는 더 큰 자극이어야 놀라는데 꽃은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피는데도 탄성이 나온다고 하시며 주름진 얼굴이 소녀처럼 물들었다.

우리는 좋은 것들, 쉬 표현하지 못할 것들은 꽃에 비유하고 마음도 형체가 없으니 꽃을 보내며 고백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그래서 꽃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날에 꽃으로 각자의 마음을 표현한다. 심지어 장례식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꽃이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꽃에 대한 추억이 많다. 프리지어 한 단이 소녀 시절부터 현재까지 꽃에 얽힌 무수한 인연과 추억을 소환해 주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지 않아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탓인지 고요히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들이 생기니 그나마 그것으로 위로를 받아야겠다. 내일은 장날이다. 꽃 화분을 몇 개 사 와야겠다. 그리고 2020년 이 지루하고 지친 봄을 꽃을 보면서 달래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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