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정책의 창이 활짝 열렸다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0.04.21 14: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던진 말은 흥미롭다. ‘아파도 나온다’에서 ‘아프면 쉰다’로 직장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 부러워했던 재택근무는 너무도 쉽게 많은 직장으로 확산되었다. 언제나 사무실에서만 일할 것 같았던 공무원들까지도 재택근무를 경험하고 있다. 근로조건과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 수준의 변화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정부정책의 결정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활짝 열린 것이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지향한다. 변화는 늘 저항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정부 정책은 문제시되는 상황을 바람직한 상황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실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담겨진 것이니, 현실에 만족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정책의지가 발동되기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기존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복잡하고 험난하다. 새로운 정책을 결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책은 사람들에게 이익과 손해를 차별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책이 결정되면 우리는 그 정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생각대로 정책을 선택할 수 없다. 정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따라서 찬성과 반대의 대립이 심화되면, 파국을 피한다는 명분에서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진다. 처음의 정책취지와는 다른 결과일 것이다. 이성과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인 정책결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늘 접하는 정파들 간의 다툼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100여년 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법과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안 보는 게 좋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는 말을 남겼다. 여러 가지 내용물이 섞여서 전혀 다른 모습의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법의 제정도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게 결정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뒤섞여서 새로운 내용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래서 정책의 결정과정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이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듯 정부정책의 변화나 새로운 정책도입이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최초 감염자가 확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나라 정부정책의 결정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정치학자 킹던이 주장한 ‘정책의 창’ 이론과 흡사한 결정상황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권교체나 의회권력의 변동, 국민여론이 변화하는 경우에, 정부 고위관료나 정책을 결정하는데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정책의 창이 열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연한 극적 사건의 경우에도 정책의 창은 열린다고 하였다.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는 과정과 정책의 창 이론은 어긋남이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우연하고 극적인 사건은 국가적 재난상황을 유발하였다. 정책을 결정하는데 가까이에 있는 여당과 야당대표, 광역자치단체 장들은 재난기본소득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정부의 주무부처 장관도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의하고 있다.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유발되는 이해관계의 대립은 너무도 미미하다. 조정하는 노력도 거의 없다. 이렇게 우연하고 극적인 사건은 새로운 정책이 결정되는 ‘정책의 창’을 너무도 활짝 연 것이다.

사람들이 정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정책의 실현을 위해 강제성을 인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이 조금은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재난기본소득에서 그 믿음을 존중받고 싶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