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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짧은 인연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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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5.11 02: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중국으로부터 날아온 바이러스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 자체도 불안하다. 봄이 오고 있건만 몸과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春來不似春이랄까. 무엇이 이런 바이러스를 나오게 했을까. 우한에서 번지는 무시무시한 전파력에 우리나라도 서서히 늘어가는 확진자 때문에 겁이 난다.

온 세계가 바이러스라는 무서운 적과 전쟁 중이다. 평온한 세월은 갑작스레 외출마저 자제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무서운 병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 또한 우리가 만날 인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 이것 또한 인연이라면 정말 무섭고 안 좋은 인연이다.

사십인 딸이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을 날 것 같이 기뻤다. 나이도 많은 데다가 요즘은 임신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다. 자연임신이 된 것도 감사하고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을 때는 내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은 착각을 들 정도로 기뻤다. 하루하루 소식을 접하며 조심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태아 소식은 하루하루를 긴장을 하게 했다. 배가 쿡쿡 찌른다고 하거나 소변이 붉다고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하루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아파서 야간에 응급으로 병원에 갔더니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다. 삼 개월의 기쁨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부풀었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긴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딸에게 할 위로의 말을 찾는다.

인연은 어떤 요인이 모여 이어지는가. 무엇이 얽히고설키어 인연을 만드는가. 아름다운 만남을 기대했는데 짧은 인연은 만남이 성사되기 전에 이별이 되었다.

만남의 순간도 갖지 못한 아쉬움이 내 탓인 것 같다. 심장 소리 들려주는 것으로 짧은 인연의 끈을 끊어버린 아기. 딸을 달래는 내 마음도 무거운 돌덩어리를 올려놓은 듯 무겁다.

아이를 만나면 잔디밭에 마음껏 뛰어놀며 자연을 알게 해주어야지. 여자아이면 예쁜 옷을 사내아이면 멋진 옷을 사주어야지 하며 부풀었던 마음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빠져나갔다.

요즘엔 유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딸과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도 유산하는 사람이 많단다. 어떤 친구는 아기집은 있는데 아기가 없기도 하고 5개월 만에 애들을 출산하는 친구도 있단다. 주변에 유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걱정된다며 집에서 쉬면서 임신을 한 건데….

이렇게 원하는 자식을 잃어버리는 원인은 환경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뱃속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비닐이 목에 감겨 처참한 모습을 한 것을 보았다.

자연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아니 먼 훗날까지 함께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일회용 사용을 줄이고 누구라 할 것 없이 환경보호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상한 현상으로 세상의 빛은 보지도 못하고 가버리는 상황은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온 것도 우리의 잘못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슬픔을 뒤로하고 딸에게 갔다. 그동안 몸을 혹사하기만 하고 영양 보충을 안 해준 것 같아 한의원으로 가서 보약을 지었다. 어릴 때 먹이고 안 먹인 게 마음에 걸렸다. 임신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말에 더 귀가 솔깃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딸은 멀리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었는지 오자마자 자리에 눕는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무기력했는지 빨래가 잔뜩 쌓여있다.

엄마의 역할은 언제까지일까. 결혼하고 나면 이제 내 손에서 떠나 편안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살림을 못 하는 딸을 위해 반찬을 해다 주고 필요하다면 당장 사서 올라가다 생각해보면 이게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헷갈린다.

다들 서울이 좋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싫어진다. 간호를 더 해주고 오라는 남편에게 답답해서 내려간다고 했다. 예전에는 편리한 서울이 좋았는데 요즘은 답답하다. 사람이 많아서 힘들고 복잡한 교통도 짜증 난다. 결혼했으니 둘이 알아서 하고 내려왔다.

우리 모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딸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몸과 마음이 늘 함께했다. 40이 된 지금도 아기 같은 딸에게 온통 마음이 가 있다. 나 역시 결혼 후에도 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렸으니 부모에게 받은 것을 자식에게 돌려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데 아이들을 좋아하는 딸은 더 힘들 거란 생각에 내려오는 내 마음도 무겁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 환경에 힘써서 세상의 딸들이 유산의 아픔을 겪지 않고 건강한 아이들과 예쁜 만남이 되길 기원해 본다.

냉정히 돌아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딸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낸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만남이 곧 있을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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