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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B.C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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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5.12 09: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기(西紀)라고 부르는 기년법은 서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원전은 영어표기로 예수 그리스도 이전 B.C (Before Christ) 로 부른다.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은 그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역사를 나눈다.

오페라무대 역사에서도 이 B. C 란 뜻은 조금 독특하게 쓰이곤 했다. 바로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두 오페라 가수가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인데, 그 중 한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로 이름을 날린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였다. 기량도 탁월했지만 최초의 음반으로 그의 목소리를 녹음한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악음반녹음의 역사는 카루소 이전 B. C(Before Caruso)와 카루소 이후로 나뉘었다. 전설처럼 문헌으로 남겨진다한들, 직접 녹음이 남아있는 가수를 넘어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카루소는 푸치니라는 오페라 거장을 만나 그 천재성이 더욱 빛을 발했고,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와 유럽의 오페라를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으로 그 주요시장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작곡자가 표기한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넘어 그만의 해석을 더해서 특정부분을 더 늘려 부르거나 혹은 템포를 바꾸곤 했는데, 그것을 들은 원작자 푸치니가 더 만족하는 바람에, 현대의 연주자들은 푸치니의 오페라 작품을 연주할 때면 악보에 쓰여 있지도 않은 템포변동을 해석하며 연주해내야 하는 고충이 더해졌다, 그렇게 오페라 무대는 테너 카루소 이전과 이후로 나뉘며 새로운 매체인 음반의 등장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면 또 한명의 걸출한 오페라 스타가 등장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다. 당시는 전설의 테너 카루소가 만들어 놓은 푸치니 중심의 최신 오페라가 대세로 자리 잡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막힘없는 성량과 테크닉에,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춘 장신의 소프라노가 나타나서는, 최신의 레퍼토리도 아닌 한 세기 이전의 캐캐묵은 구닥다리쯤으로 여겨졌던 벨칸토 오페라들을 어마어마한 실력으로 접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칼라스의 뉴욕공연에는 지금의 아이돌 공연처럼 팬들이 밤새 장사진을 쳐서 티켓을 구해서 입장했으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과 소동을 일으키며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또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염문설로도 유명한데, 이 선박왕이 결국은 당대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버리고, 다시 재혼한 사람이 존. F.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여서 연예계 핫이슈의 중심에 놓이기도 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신년파티를 밤새 거하게 즐긴 칼라스가 다음날 대통령이 참석하는 오페라를 소화 못할 정도로 목이 부어버려 의료진과 매니저가 공연 취소를 권유했지만 ‘누구도 나 칼라스를 대신할 수는 없다’라는 자부심에 따라 스스로 공연에 올랐고, 결국은 1막이 끝나기도 전에 공연을 포기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당시에도 오페라 공연엔 반드시 대역이 대기하고, 주역의 불의 사고시 교체하여 남은 공연을 끝내는게 필수였지만, 마리아칼라스가 1막 무대에서 하차한 후엔 아무도 감히 칼라스 대역으로 나서려는 소프라노가 없어 공연이 거기서 끝나버렸다는 사실로 그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이후 공연여파로 소송전에 휘말리며 유명세를 치루며 세기의 디바로 불리던 그녀였지만, 말년에는 쓸쓸히 파리에서 홀로 죽었고, 이런 드라마틱한 삶 자체로 다시금 조명 받았다.

그러나 살아생전에 그녀가 유명했던 건 이런 가쉽거리가 아닌, 음악적으로 엄청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그녀만의 작품해석능력과 탁월한 연기력.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파트를 넘나드는 폭넓은 성량과 테크닉 때문이었다. 저음파트인 카르멘이나 데릴라 같은 역들도 막힘없이 소화해내며 명반들도 남아있어서, 원래 메조소프라노 역할인 카르멘을 가끔씩 소프라노로 캐스팅할 때마다 좋은 핑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또 한 번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과 이후로 오페라 무대는 그들을 추억한다.

공연계는 이렇게나마 전설적인 연주자들로 시대를 구분하며 그들을 기억하건만, 이제는 한낱 바이러스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생겼다. 이미 무대 상황은 코로나 이전 B. 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 (Post Corona)로 그 환경이 바뀌고 있다. 온라인/무관중/생중계 공연으로 간신히 명맥을 잇는 중이다.

어쩌면 먼 훗날의 사람들은 B. C를 ‘사람들이 공연을 한자리에 모여서 보던 시절’ 쯤으로 추억하지나 않을까 괜시리 가슴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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