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적 권력은 권력이 제도와 정책이라는 네트워크를 타고 관료들에게 배분되는 묘한 독과점 체제를 형성한다. 관료라는 집단적 아집은 개인의 인간관계, 승진, 신념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마침내는 문화적·심리적으로 사회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코로나19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나타난 관료주의는 썩 유쾌하지가 않다. 대통령과 국회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관료들은 70% 차등지급을 주장하며 마지막까지 관료주의적 권력을 행사했다.
재난금 배분의 기준은 더 기가 막히다. 4인 기준 가구로 재난금의 규모를 산정하고 사실상 세대주가 아니면 지급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와 유교의 가부장 제도를 신봉하는 종교국가가 아닐진대 국민 개인의 주권은 증발하고 가부장이 세대원을 대표하는 시대의 퇴행을 보여주었다.
“저는 세대주인 남편과 사이도 좋지 않은데 재난금을 분할받기는 어려워요.” “아빠와 소통하지 않고 산지가 몇 년째인데 세대주인 아빠가 재난금을 독차지 할거에요.”“세대주가 신청하는 지원금은 은행 공인인증서가 필요한데 없어요.” 인터넷과 SNS에 차고 넘치는 하소연을 듣다보면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재앙지원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토당토한 지급방법을 만든 관료들을 문책하라고 요구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대통령과 정치권의 감독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실무의 권한을 행사하는 관료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원금 배분기준을 통해 실제로 이득을 얻는 집단은 누구일까?
첫째 은행이다. 지원금을 카드로 지급 받으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고 없으면 은행을 방문해 카드와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국민 전체를 상대로 홍보하고 수수료 등을 챙길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은행과 가장 친한 세력은 기재부 관료들이다.
둘째, 가부장들이다. 아직도 세대주의 대부분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필자를 포함한 그들은 호주제 폐지 이후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지만 이번 조치로 자못 어깨를 피게 되었다. 가족들이 지원금을 할당받으려면 가장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부장제의 부활이다.
셋째, 소득과 능력이 있는 독신 세대주다. 4명 가족이면 1인당 25만원을 받지만 건보료를 내는 홀로 세대주는 40만원을 받는다. 주민등록상 세대가 분리되어도 건보료를 낼지 못할 만큼 가난하고 어려운 1인세대가 상대적으로 소외받는다. 긴급재난금의 의미가 극명하게 퇴색되는 순간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지급제도는 나쁜 제도다.
넷째,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이다. 아마도 스스로 가부장이거나 소득이 있는 1인세대주일 가능성이 농후한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진 나쁜 지급제도는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세금과 건보료를 내는 세대주를 우대하는 방식의 재난지원금 지급방식을 통해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이 이득을 취한 것이다.
코로나19 긴급재난금은 국민의 혈세와 국채로 지급되는 거룩한 생명 줄이기에 국민 개인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당사자여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관과 남자 가부장, 은행과 소득이 높은 1인세대주에게 이익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지급방식은 국민을 배반하는 행위이며 시대의 퇴행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렵게 결정한 긴급재난금이라는 배가 관료들의 손을 타고 산으로 간 까닭을, 나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