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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생활 속 거리 두기

이종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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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5.19 21: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COVID-19가 전 세계를 뒤덮으며 우리들 삶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다. 집 밖에 나가기도 두렵다. 방송에서는 마스크를 꼭 쓰고, ‘사회적 거리(2m 정도)’를 지키라고 한다. 말인즉 외부인을 만날 때 그만큼 떨어져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말(침방울)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거리’라는 말이 왠지 낯설다. 평소에 잘 듣지도 못했던 생소한 말이 이젠 일상용어가 되어 버렸다. 영어로는 social distance로 표현되는데 알고 보니 생소한 말은 아녔다. COVID-19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지, 이젠 ‘생활속 거리두기’로 바뀌었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Edward T.Hall은 일찍이 그의 저서 『THE HIDDEN DIMENSION(숨겨진 차원)』에서 사람 사이의 공간적 거리를 4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46cm(18인치) 이내의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로 가족, 연인 등과 같이 숨결이 닿을 수 있고 속삭이거나 스킨십(skin ship)이 가능한 거리이다. 둘째로 46~120cm(4피트)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로 친구, 가까운 이웃처럼 격식과 비격식이 넘나드는 거리이다. 셋째로 120~ 360cm(30피트)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로 일상의 사회생활과 사무적인 사람과의 거리, 제3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이다. 넷째로 360cm 이상의 공적 거리(Public Distance)로 강의 와 연설 청취, 무대 관람 등의 거리이다. 인간관계의 거리이다. 요즘 강조되는 사회적 거리(생활속 거리두기)는 일상의 사회적 거리가 아닌 감염을 방지하는 감염 예방 거리가 됐다. 따라서 ‘예방 거리’나 ‘감염 방지 거리’라는 말이 어떨는지? 어느 방송에서는 ‘건강 거리’라고도 한다. 그도 괜찮을 듯싶다.

Hall의 이런 공간 개념을 되뇌이며 삶을 비춰본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형제들, 자식을 보고, 손주들을 보았을 때는 친밀한 거리를 유지해 왔었다. 첫선을 보고 약혼을 하고는 아내와 46cm가 아니라 0cm의 거리를 유지했었다. 자라면서 부모와의 거리도 멀어지고, 자식들과 손주들이 커가면서 친밀한 거리는 개인적 거리로 벌어지게 됐다. 아내와의 거리도 조금씩 멀어지게 됐다. 가끔 밖에 나서면 노부부들이 시장에 다녀오거나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본다.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는 쌍은 두셋 정도이고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쌍이 더 많아 보인다. 그것도 아내 뒤를 어정어정 따라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나이 들어갈수록 남자가 가치와 무게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실감한다.

가뜩이나 늙어가면서 자식들과 아내들에게 멀어져 가는 노인들에게 COVID-19로 인한 ‘사회적 거리’가 버릇 들고 습관화되어 굳어진다면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COVID-19를 예방하기 위해서라지만 감염될까 두려움이 앞서 친지나 지인을 만나도 손을 내밀기가 꺼려지고, 가까이 가서 선뜻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워진다. 만에 하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감염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친지나 지인이 감염원인 제공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의 두려움이다. 그러니 사이가 멀어진다. 그나마 전화로 안부를 나누기도 하지만 “잘 지냈느냐?”라는 말도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5월 8일 어버이날, 뉴스에서는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는 자녀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유리창을 두고 안부를 물으며 유리창에 손바닥을 맞대는 모습이 애잔하다. 카네이션을 받은 부모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지만 자녀들의 얼굴엔 눈물이 흐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미생물에 온 지구상 인류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 많은 인명이 유명을 달리하여 슬픔을 안겨주고, 경제가 침체되어 삶이 무너져 간다. 이웃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을 꺼리게 한다. 그래도 들려오는 자원봉사자들의 소식, 감염병 퇴치 성금 기탁, 마스크를 만들어 기탁하는 소식들이 우리들 마음의 거리를 좁혀준다. 비록 생활속 거리두기는 공간을 멀게 해도 마음만은 따스한 사랑을 담아 가까워지는 매일매일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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