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침을 열며] ‘오월길’을 걸으며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0.05.24 13: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먼동이 트기 전 증평에서 첫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하니 설레는 마음이다. 기차는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 깊이 파묻혀있는 고요의 새벽을 뚫고 지나갔다.

스치는 차창가로 햇살이 엷다.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는 오월의 나무들, 산과 들은 나날이 초록으로 짙어가고 그 녹색을 보는 눈은 상쾌하고 즐겁다. 초원의 집 뜰에 잔디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맨발로 그 촉촉한 잔디를 밟으며 발가락 사이로 초록 물이 나오도록 온종일 잠기고 싶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자연의 선물이다. 가정의 희망과 소원이 만개할 수 있도록 가정의 달을 넘어 청소년의 달로 혼자가 아닌 온 세상이 초록으로 행복한 5월이기를 소망해 본다.

이윽고 송정역에 당도했다.
40년 전 폭력과 저항, 총격과 피로 물들었던 광주의 도심은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제는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민주화 항쟁의 마지막 격전지 옛 전남도청을 둘러싼 구도심을 걸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시원하게 푸른 하늘 녹색의 싱그러움을 전해주는 나무의 내음, 형형색색 찬란한 꽃들의 눈인사로 새잎을 피우기 시작했지만, 한여름보다 뜨거웠던 5월의 거리는 한산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준비해 왔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행사는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도 모두 휴관에 들어갔다.

‘오월길’을 걸었다. 민주화운동 사적지와 문화관광자원을 이어 5개 테마, 18개 코스로 조성한 도보 여행길이다. 그 중 첫 번째인 ‘오월인권길’ 횃불코스는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발원지인 전남대학교에서 시작해 시민군의 마지막 결사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까지 이어진다.

이어 광주역 광장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대인교차로 방향으로 향했다. 5월의 햇볕도 제법 따가웠다. 땀이 흐른다. 1980년 그날 수많은 학생들이 계엄군에 쫓기며 항거했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뜨거운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녹두서점 옛터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아시아문화전당이다. 하늘마당과 예술극장을 지나 사적 5-3호로 지정된 상무관 앞에 잠시 멈췄다. 시민들의 주검을 임시로 안치했던 곳이라니 마음이 짠하다.

우규승 건축가는 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하면서 5·18의 역사성을 지키고자 옛 전남도청과 경찰청, 상무관 건물을 보존하고 그 외 신축 건물은 모두 지하에 배치했다. 지상에는 광장과 공원을 계획하고 지하 공간도 천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해 ‘빛의 숲’이라고 했다.

상무관과 옛 전남도청 사이 사적 5-2호로 지정된 5·18 민주광장에서는 가족단위로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따금 몇몇 청소년들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분수대를 몇 바퀴 돌며 즐거워한다. 분수대 앞에서 금남로 방향으로 돌아서면 오른쪽에 미색 외벽으로 단장한 사적 28호의 전일빌딩이 보인다. 당시 언론사들이 입주해 있었고, 계엄군을 피해 달아나던 시민들이 몸을 숨기기도 했단다.

주소가 금남로 245로 바뀌고, 계엄군이 발사한 탄흔 245개를 상징해 ‘전일빌딩245’라고 명명했다니 사뭇 아이러니하다. 전일빌딩은 4년여간 리모델링을 통해 광주의 현대사를 품은 복합 문화시설로 거듭났다. 도서관, 갤러리, 문화센터, 남도 관광센터 등을 갖췄다. 외벽에는 주황색 원으로 탄흔이 표시되어 있어 그때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전일빌딩245’에서 시작되는 금남로의 또 다른 이름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이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명예도로로 지정되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사적지 보존 및 활용은 물론 복원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동안 방치되거나 폐허 된 공간들은 각각 특성을 담은 민주·인권·평화 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정체성과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는 명실상부한 교육 장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더욱이 얼마 전 ‘충장로1가 간판개선사업’ 디자인개발 및 실시설계용역 기술능력 평가에 참여한 것은 나에겐 뜻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1988년에 만학을 하며 광주대학교를 5년이나 다녔기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서이다.

충장로는 ‘광주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신흥 대규모 택지개발로 충장로 상권 쇠락은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충장로는 광주지역 상권 중 제일임은 분명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금남지하상가, 음식문화거리, 예술의 거리, 웨딩의 거리, 패션의 거리, 혼수의 거리, K-POP스타의 거리 등 다양한 쇼핑상가, 문화 콘텐츠가 풍부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 대규모 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무질서한 간판정비로 도시환경개선을 꾀해 활력이 넘치는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 더욱이 침체된 원도심 상권의 활기를 찾아 지역 상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일이다. 이를 통해 특색 있는 거리공간 이미지 창출로 걷고 싶은 명품거리가 조성될 것이다.

충장로는 노후 된 건축물로 다양한 형태의 파사드가 혼재해 있다. 또한, 혼잡한 돌출간판으로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다. 이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창문이용간판으로 시각적 공해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분별한 장식의 디자인이 아닌 간결하고 모던한 디자인이 요구된다. 부재의 낭비를 줄이고 제작과 설치에 불필요한 공정을 최소화하는 경제적인 디자인이 절실하다. 현재 업소주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향후 개발 여지를 남겨두는 여유 있는 디자인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파사드 경관바(BAR)디자인으로 새롭게 조화를 이루는 충장로가 되었으면 하는 의견을 나누었다. 업소의 얼굴은 간판이며, 건물의 얼굴은 익스테리어다. 존별 색상적용, 업소의 특징을 살린 픽토그램 적용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고객의 선택은 단 3초가 좌우한다고 한다. 이 순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외관(파사드)이 첫 번째 조건으로 꼽힌다. 인테리어나 분위기, 서비스 등이 단골고객을 만든다면 업소의 외관 익스테리어는 업소를 접하는 고객들에게 호감도를 높이고 거리의 경관이미지를 고조시킬 것이다.

지역적 특성을 살리고 업소의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의미를 담은 픽토그램을 간판디자인설계에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분명 충장로만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거리 이미지를 창출하고, LED조명 내장설계는 도시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5월의 따뜻한 햇볕 아래서 바람도 초록을 안아서 그 결이 보드랍고 싱그럽다. 눈과 코를 통해 향기를 보며 마시고, 지친 영혼에 쉼을 주는 5월의 향기는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암울하기만 했던 광주의 도심이 민주화의 산실로, 걷고 싶은 명품거리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이제 오월길은 광주의 것만이 아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길이다. 계절의 여왕 5월부터 한반도는 평화의 꽃이 찬란하고 아까운 죽음도 꽃으로 피어난다. 자랑스런 코리아, 자유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5월 길을 걸어야 한다. 5월 길 없이는 한결 따듯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