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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체험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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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6.08 01:2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등 봄꽃이 흐드러지게 강산을 수놓고 있다. 귀촌하면서 심어둔 꽃들이 봄이 왔다고 활짝 기지개를 켠다. 천지가 봄이 왔다고 알리는데 春來不似春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가 우리나라를 강타하더니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인들을 벌벌 떨게 한다. 중국 다음으로 우리가 제일 심각해지면서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입국 금지하더니 이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비상사태다. 강대국이라고 큰소리치던 나라에서 우리에게 진단키트 좀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거리두기 하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하루에 몇 번씩 오고 학교와 학원 회사까지도 비상상황이라니 나 역시 아무 이상 없어도 자가 격리중이다. 책을 보면서 집안에서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밑천 없는 장사를 하지 말라던 글쓰기 스승의 말씀이 귀에 쟁쟁해 책을 펼친다. 그런데 점점 이상하게 글자가 잘 안 보인다. 서너 장도 읽지 못했는데 글자 위에 동전만한 구름이 여기저기 떠다니기 때문이다.

책 읽기가 힘들어 책을 놓고 티브이를 봐도 코로나 확진자수를 알리는 숫자가 퍼지면서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걱정이 엄습한다.

지난 가을경부터 운전할 때도 앞이 흐리고 앞차 번호도 잘 안 보였다. 나이 들면 운전면허를 반납하라고 하던데 나도 그래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운전을 못 하면 좋아하는 여행은 어떡하나. 병원 갈 생각은 잊은 채 걱정만 많아진다.

딸 때문에 간 병원에서 한의사는 딸보다도 엄마가 더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한두 시간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 지구력이 약해서 그런가 했는데 몸의 기능이 약해서였다는 것을 이제서 알게 되었다. 눈도 안 좋다는 한의사 말에 안과를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코로나가 잠잠하면 안과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심해지는 것이 티브이 화면도 흐릿하게 보이는 게 답답했다. 집 가까이 있는 안과가 잘한다고 해서 마스크에 검은 안경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젊은 의사는 백내장이라고 했다. 사진을 봐가면서 설명을 조곤조곤 자세히 하는 친절한 모습에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백내장이 오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노화란다. 그 말이 왜 더 서글프게 들릴까.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는데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고 육십 년 넘게 썼으니 고쳐가며 살라고 한다. 병원과 친하게 되는 이유가 나이라는 것이 우울하다.

그대로 있다가는 녹내장까지 온다는 안과의사의 말을 듣고 좀 더 방치했더라면 건강을 잃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얼핏 보고 내 눈의 이상을 말해준 한의사가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왔다. 애들에게 연락했더니 서울에서 하지 왜 시골서 하느냐고 난리다. 서울서 하면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어 그냥 여기서 한다고 했다. 요즘은 간단하게 하는 것이 백내장 수술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성질도 급하고 단번에 결정하는 내 성격을 아는 애들은 그냥 수술하면 조심하라는 말만 한다.

수술하는 날. 귀밑하고 눈 아래로 주사기를 주입하고 마취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긴장된다. 마취로 어지러운 몸을 비틀거리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한 눈을 내놓고 다른 눈엔 덮개를 덮는다. 침착한 의사의 잔잔한 말소리를 들으며 수술하지 않는 눈을 떠본다.

흐린 빛이 덮개를 통해 이런저런 그림을 보여준다. 눈앞에 피카소의 그림이 보이는가 하면 깊은 물 속에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것 같기도 하다. 발만 움직이면 물 밖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일으킨다. 수술하는 내내 온갖 그림과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긴장 풀고 편하게 있으라고 하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목이 뻐근하다. 목이 아프다고 했더니 의사는 수술하는 동안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예민한 성격이 어디로 가겠는가.

귀밑에 한 마취로 입이 돌아가 서너 시간은 와사 환자같이 된다고 했다. 물도 마시기 힘들고 식사하기는 더욱 힘들다. 전에 와사로 입이 돌아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잠시의 고통도 이렇게 힘든데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한시적인 고통도 이럴진대 평생을 고통에서 사는 그들의 아픔이 전해지며 마음이 짠해진다.

어느 개그맨은 눈에 병이 오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건강할 때 보던 것들을 이제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사는 그는 얼마큼의 좌절 끝에 평정심을 찾고 장애를 극복했을까. 티브이에 의연한 모습으로 나온 그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돋보기를 다시 맞추었다. 책보기가 훨씬 수월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느껴보라고 눈이 고장 났나 보다. 이번에 제대로 장애체험을 한 것 같다. 돋보기 너머로 선명한 글자들이 방긋 웃으며 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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